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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olofv 님의 블로그

17세기 중후반은 소빙하기로 평균 기온이 2~3도 낮았던 시기였다고 한다. 15세기부터 시작된 장기적인 기후위기였다. 17세기를 제외하면 구체적인 측량 기록은 없지만 당시의 역사적 사건들에 비추어 추정하고 있다. 조선 현종 때의 경신대기근(1670~1671)도 소빙하기로 인해 생긴 사건이었다. 3~4세기 중국의 혼란기 5호 16국시대와 훈족의 이동으로 인한 게르만족의 이동도 또한 고대 소빙기의 영향이라는 원인 분석도 있다. 농업에 있어서 알맞은 기후는 먼저 채워져야할 전제에 해당한다. 기온의 하강과 그에 따른 식량 생산의 저하, 가축의 죽음, 전염병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알 수 없는 공포를 불러오는 것이었다. 왕이 있었다면 왕의 지지율은 떨어지고, 그에 따른 권력은 약화되어 2차적으로 여러 혼란상을 연출된..

슈말칼덴 전쟁(Schmalkaldischer Krieg, 1546~1552)은 신성로마제국의 여러 제후국들이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인해 슈말칼덴 신교 동맹을 맺음에 따라 구교 가톨릭 진영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이다. 소빙기로 인한 생산력 감소와 전염병 창궐, 귀족의 쎈 입김, 종교에 대한 비판이나 봉기들은 그 전에도 그랬다. 그러나 구텐베르크의 활판인쇄술(1450년경)에 맞물려 정보 유통의 속도는 크게 늘어나게 되었고 여기에 루터의 95개조 반박문(1517)이 그 물살을 탔다. 독일어가 보급되면서 가톨릭의 문자 해석권에 기반한 주요 기득권에 서서히 금이 갔다. 여러 제후국들은 신교를 통해 구교에 대한 경제적 의무에서 벗어나려 했다. 종교에 대한 교리는 그냥 하는 말이었고 사실은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

16세기에 현재 독일 지역을 포함한 유럽의 봉건 구조는 흔들리고 있었다. 소빙하기의 추운 날씨는 농작물 생산력을 낮추고 있었다. 문자 해석의 독점을 통한 가톨릭의 면벌부 판매를 비롯한 부패는 낮아진 생산력과 전염병, 팍팍한 삶과 맞물려 당시 사람들의 불만을 키웠다. 기존의 권력 구도에 대한 불신이 계속 싹트고 있었다. 신대륙 발견을 통해 전성기를 맞이한 스페인은 결혼 동맹을 통해 입지를 넓혀가던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가문과 결합했다. 스페인과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1519~1556)는 이탈리아의 패권을 두고 프랑스와의 파비아전투(1525)에서 대승리를 했다. 화승총과 화약이 신무기로 궤도에 올라 쓰여지기 시작했다. 이에 맞춰 스위스 용병으로 대표되는 용병들은 몰락해갔다. 당시 독일 지역은 '신..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비텐베르크 대학교 교회 정문에 붙인 95개조 반박문(1517)을 시작으로 독일과 유럽에서 종교개혁의 소용돌이가 일어났다. 이 소용돌이 안에서 루터파·칼뱅파·성공회 등의 프로테스탄트(개신교)가 생겼다. 구교 가톨릭의 영향을 비교적 받지 않는 북유럽, 대체로 당시 북부독일지역에서 개신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이탈리아와 먼 쪽은 개신교를 받아들였다고 봐도 될 듯 하다. 바이에른 등 남부 독일에서는 가톨릭이 강했다. 여기에는 종교적 신념보다는 지정학과 그에 따른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다. 역사적 사건이 그렇듯 마르틴 루터라는 개인이 역사의 방향을 바꿨다기보다는 역사의 방향이 바뀌는 전환점에 서있던 게 마르틴 루터였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요한네스 구텐베르크의 활판인쇄..

요하네스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 ~1468)가 만든 금속활자와 활판인쇄술은 세계사에 매우 큰 영향을 끼쳤다. 인쇄물의 공장식 생산은 장기적으로는 학문의 발전과 전파의 기반이 되었다. 그전에도 목판인쇄술이 있었으나 효과적이지 못했다. 책을 보는 독자층도 귀족층에 한정되어 주로 필사를 하는 방식으로 책을 만들었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의 95개조 반박문(1517)은 독일어 문자로 인쇄되어 광범위하게 퍼질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문자가 민중에게도 보급되었다. 당시 사회의 지식 수준은 문자와 인쇄술 보급으로 인한 정보의 빠른 전파를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마녀사냥 지침서인 '말레우스 말레피카룸(Malleus maleficarum, 마녀를 심판..

과도기다. 가문주의는 점차 약해지고 개인주의가 가속화되는 사회다. 예전에 1년에 몇 번 친족간의 유대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던 명절의 제사나 차례는 악습이 되었다. 인구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가부장은 해체되고 가정의 권력 구조는 변화했다. 아니 결혼제도 자체가 붕괴하고 있다. 이미 모일 수도 없다. 가족간 밥먹는 행사의 기능이라도 유지하면 다행인 게 되었다. 그럼에도 제사(祭祀)와 명절의 차례(茶禮) 문화는 아직도 질기게 살아남고 있다. 누구도 바라지 않는 고리를 이제는 끊을 때가 되었다. 어렸을 적, 명절이 다가오면 날짜가 가까워지는 만큼 아빠에 대한 엄마의 잔소리가 늘어나는 것을 보았다. 그때는 그걸 받아주지 않는 아빠가 야속하고 이해가 안되기도 했다. 받아주고 대화하면 해결될 일인데 왜 꼭 명절이 ..

요바이(よばい)는 야밤에 마을의 남자가 여성의 침실에 숨어 들어가는 풍습을 말한다. 주로 서일본 지역에서 나타났다고 한다. 고대 일본에서 풍작을 기원하는 행사에서 유래했다고 추정한다. 후데오로시(ふでおろし)라고 유부녀나 과부 등의 나이있는 원숙한 여성들이 동정인 남자의 첫 경험(?)을 떼주는 풍습도 존재했다고 한다. 요바이 풍습은 대략 1,000년정도 지속된 것으로 보인다. 메이지 유신(1868) 이후로 서구적인 성관념이 유입됨에 따라 요바이는 '성폭행'을 가리키게 되었으며 없어진지는 아직 100년도 채 되지 않았다. 요바이(よばい)도 이 바닥의 룰이 있다. 요바이(よばい) 풍습은 전국시대에 생긴 것으로 보인다. 남자가 다 죽어 씨가 마른 시대에 생긴 전근대 풍습이다. 현대에서는 성범죄의 영역이다. ..

구조론연구소gujoron.com김동렬의 구조론 연구소 사이트 세상은 구조로 되어 있다. 이 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가볼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우주부터 또한 반대로 가볼 수 없고 볼 수 없는 아주 자그마한 입자까지 모든 것은 구조가 있다. 구조없이 존재는 없다. 우리는 빅뱅이든 뭐든 대사건 안에서 연출된 사건 안의 사건이다. 큰 사건 안에 작은 사건들이 존재한다. 원래 우리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지구에 등장한 처음 하나의 세포로부터 시작해 복제되었다. 물질 혹은 원자는 고정된 기본틀이 아니다. 기본 단위가 되는 알갱이가 기본적으로 존재해서 세상을 이루고 있는 게 아니다.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로 이루어진 구조를 갖고 있다.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루어져 있다. 양성자는 두 개의..

가라유키상(からゆきさん)의 사전적 의미다. 19세기 후반부터 메이지유신을 거치며 국가 차원의 취업사기, 인신매매로 팔려서 세계 곳곳의 유곽에서 일하던 매춘부를 칭하는 말이다. 매춘은 동아시아·동남아시아·만주·러시아·영국령 인도·미국·호주 등지 등으로 한 때 일본 전체 수출 금액의 10%를 벌어다주는 '산업'이었다고 한다. 이들은 일본 제국으로부터 '낭자군(娘子軍)'이란 칭호를 얻었고 한 때 애국자로 치켜세워졌다. 일본 1만엔 지폐의 '후쿠자와 유키치'도 칭송했다. 실상은 사기와 인신매매 산업으로 인해 동원된 야만적 범죄였다. 인신매매가 돈이 되니 조직적인 사업이 등장했다. 청일전쟁의 전비를 일본의 매춘부들이 번 돈으로만 충당할 수 있을 정도였다. 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이들은 '국가의 수치'로 되어 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