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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olofv 님의 블로그
삼국지 위촉오시대를 사실상 끝내고, 중원을 장악한 것은 조조의 위나라였다. 조씨의 위나라는 사마씨에게 넘어갔고, 팔왕의 난과 영가의 난을 거쳐 서진은 멸망하고, 사마씨는 강남쪽에 겨우 명맥을 이을 뿐이었다. 당시 5호(흉노, 선비, 저, 갈, 강) 의 남하는 유럽의 게르만족 이동과 시기상 겹친다. 기후위기에 따른 먹고사니즘에 의한 인구이동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또 유럽에도 이 5호16국시대의 기록이 남아있다고 하는데, 훈족때문에 고생했다고 기록되어있다. 5호16국시대의 주요 국가와 시기, 전체 구도를 보는 데에 초점을 두고 작성하려 한다. 간쑤성 일대 - 전량(301~376) : 한족 장궤 장궤는 서진의 양주자사였고, 당시 양주는 이민족들이 날뛰던 무대였는데, 선비족을 격파하고 70년이 넘는 기간을 ..
고구려와 중원의 조위와의 전쟁, 그리고 사마씨의 서진 삼국지 위촉오 시대를 끝내고, 조조는 중국을 다시 통일했다. 위나라(조위, 220~265)는 촉의 제갈량 사후, 남서쪽의 널널해진 정세와 맞물려, 북방에 신경을 쓸 수 있게 되었고, 조위의 사마의는 고구려의 동천왕(227~248)과 선비족을 꼬셔, 요동지역과 낙랑군, 현도군에 위치했던 공손씨의 동연을 치게 된다.(234~239) 공손씨의 동연이 제거된 후, 고구려는 완충지대를 잃고 조위와 국경을 맞대게 되었고 새로운 긴장구도가 조성되었다. 동연을 멸한 후, 전리품에 불만을 가진 고구려는 서안평(현 단둥시)을 공격하였다(242). 이로 인해 조위의 관구검이 선비, 오환족을 동원하여 고구려를 침공했다(244). 고구려는 양맥 등에서 관구검의 조위군과의..
훈족의 등장 유목민의 역사는 무언가 짙은 안개가 드리워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훈족은 문자체계가 없었다고 하며, 당연히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흉노족이 활동하던 현재의 카자흐스탄 발하슈호 지역에서부터 유라시아 스텝지대를 거쳐, 흑해연안에서 고트족의 이동을 강제하며 유럽에 등장하기까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현재 고고학과 유전자계통분석 연구결과에 따르면, 훈족은 흉노족과 스키타이인과의 혼혈이라는 설이 유력하다고 한다.사실 유목민족의 혈통은 워낙 여타 유전자와 섞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에 DNA의 유사성으로만 판단하는 관점은 핵심적인 증거가 될 수는 없는 것 같다. 생활양식과 문화, 조직체계 등을 종합적으로 봐야하는데, 학계에 관련 연구자료가 부족한 듯 싶다. 여타 유럽과 중국에서의 기록 등을..
흉노족, 세력으로서의 등장 사마천의 사기에 흉노는 하나라의 후손으로 서주를 밀어버린 훈육과 험윤이 조상이라고 한다. 기원전 4세기말 전국시대에 흉노는 진나라를 공격했다.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은 BC215에 몽염을 보내 오르도스 지역의 흉노를 축출하고 만리장성을 쌓았다. 묵돌 선우가 아버지 두만 선우를 죽이고, 선우에 등극했다.(BC209) 묵돌은 명적(소리나는 화살)을 이용해 자신이 명적을 발사하는 대상에게 일제히 사격을 하라고 하였다. 자신의 아내든, 누구든 명적이 도달하는 대상에게 사격을 하라고 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지시대로 하지 않으면 무참히 부하를 죽였다고 한다. 그 방법으로 아버지를 제거하고, 흉노족을 통합한다. 당시 중국은 초한전쟁시대(BC206~BC202)였는데 유방이 한나라를 세워 ..
민족주의와 국가, 국가의 법인격 민족을 기반으로 한 국가라는 개념은 동아시아에서는 익숙한 개념일수도 있는데, 유럽에서는 사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약 250년전?)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 민족주의라는 개념은 세계를 발견한 후에야 온전히 생길 수 있는 개념이다. 현행 법 체계는 법인격을 인정하고 있다. 이 법인격이라는 것은 뭐 법률적으로는 갑설, 을설하며 논쟁이 있을 수도 있으나, 법인이 외부에 대해 의사결정의 한 단위로 작동할 수 있는 구조를 가졌을 때, 의사결정의 주체로 인정된다는 것이다. 법인의 대표이사나 직원들은 바뀔 수 있어도 법인의 의사결정은 연속성을 가지고, 마치 자연인과 같은 권리와 의무가 발생한다. 국가에도 연속성있는 의사결정행위가 있고, 외부(세계)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국가 내..
형사취수제? 이 바닥에서는 사회보장제도다. 옛날 유목민의 사회에는 형사취수제란 관습이 있었다.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취한다(?)는 풍습인데, 그래도 잘먹고사는 현대의 우리가 보기에는 여성의 인권을 무시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야만한 관습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건 현대의 기준이고, 당시 몽골이라는 지역, 그 바닥에서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다.몽골의 척박한 환경에서 남편을 잃은 여성은 특별한 세력이 있지 않은 이상,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여성의 입장에서도 부족을 벗어나서 살수는 없으며, 부족의 입장에서도 팀원이 없어지면 그만큼 피해가 된다. 형사취수제는 야만적인 관습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사회보장제도였다. 수계혼이라고도 하는데, 흉노의 노상선우(묵돌선우 아들)때 한문제의 환관이었다 귀순한 중항열과 ..
예송논쟁이란? 조선의 예송논쟁은 현종 재위시기, 1659년의 기해예송, 1674년의 갑인예송을 말한다.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겪고 피폐해진 조선에서 인조는 심심할 만하면 역모사건이 일어나는 왕권이 좀(?) 불안한 시기를 보내는데, 이 인조는 나이차이가 29살이나 나는 계비(장렬왕후)를 맞은 적이 있었다. 장렬왕후는 당시 소현세자, 봉림대군(효종)보다도 어렸고, 손자(?)인 현종과도 16살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이 꼬인 족보가 결국 효종의 승하 이후 2차례의 예송논쟁으로 격화하게 된다.과연 승하한 효종을 장렬왕후가 장자로 보고 3년상의 참최복을 입어야 하는가, 아니면 차자로 보고 기년복을 입어야 하는 것인가가 문제가 된 것이다. 또 1674년에도 효종의 부인 인선왕후의 상에 대해 어떻게 예를 갖춰야 하는가가..
도구의 완성 새로운 무기의 등장은 새로운 사용 방법을 가져오고, 전쟁의 양상을 바꾼다. 처음 총기가 등장했을 때는 화승총을 장전하려고 총열을 마구 쑤시다가 도륙나는 경우도 있었지만, 점차 새로운 총기가 등장하며, 숙련되고 무사도로 무장한 기존의 기득권을 가진 직업군, 사무라이들은 총든 평민에게 주도권을 뺏기게 된다. 자연히 평민의 목소리가 커졌다. 일본 메이지유신 이후의 세이난 전쟁(1877)을 들 수 있다. 발도 돌격이니 뭐니 했지만, 사무라이들은 결국 최신 후장식 총기에 발렸다. 사쓰마번의 반군들도 총기를 탈취하긴 했지만, 구식 전장식 소총이었다(...).전장식 소총과 후장식 소총이 격돌한 사건은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1866)의 쾨니히그레츠 전투도 들 수 있는데, 프로이센의 후장식 소총(드라이..
부분의 합은 전체가 아니다. 전체가 부분을 결정한다. 수학은 과학을 서술하는 매우 정확한 언어이지만, 거기에는 이미 합의되어 있는 많은 부분들이 있다.이 것을 자연 및 현실에 적용할 때, 이미 전제되어있는 부분들을 살피지 않아 엔트로피를 무시하고 환원주의에 빠지기도 한다. 라디오나 컴퓨터를 분해한 후, 부품의 집합만 갖고 있다고 작동이 되지는 않는다.부품의 집합에 더해 부품조립의 질서가 필요하다. 여기에는 인간의 관측과 예상과는 다른 비용이 생긴다. 예를 들면, 조립하는 인간의 노동력이다. 세상 만사 모든 것에는 묶어주는 질서의 비용이 있다. 하지만 사실 이 것은 자연을 관측대상으로 하여 역추적하는 인간의 방법상의 순서와 관점일 뿐, 실제 존재하는 자연으로는 그 반대다. 엔트로피란 질서해체의 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