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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제사(祭祀)와 차례(茶禮), 이젠 없어져야 한다. 본문

역사

한국의 제사(祭祀)와 차례(茶禮), 이젠 없어져야 한다.

Toolofv 2025. 1. 25. 02:47

 
 
과도기다. 가문주의는 점차 약해지고 개인주의가 가속화되는 사회다. 예전에 1년에 몇 번 친족간의 유대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던 명절의 제사나 차례는 악습이 되었다. 인구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가부장은 해체되고 가정의 권력 구조는 변화했다. 아니 결혼제도 자체가 붕괴하고 있다. 이미 모일 수도 없다. 가족간 밥먹는 행사의 기능이라도 유지하면 다행인 게 되었다. 그럼에도 제사(祭祀)와 명절의 차례(茶禮) 문화는 아직도 질기게 살아남고 있다. 누구도 바라지 않는 고리를 이제는 끊을 때가 되었다.
 
어렸을 적, 명절이 다가오면 날짜가 가까워지는 만큼 아빠에 대한 엄마의 잔소리가 늘어나는 것을 보았다. 그때는 그걸 받아주지 않는 아빠가 야속하고 이해가 안되기도 했다. 받아주고 대화하면 해결될 일인데 왜 꼭 명절이 끝나면 싸우냐 이 말이다. 그것은 필자의 착각이었다. 말로 표현되는 다툼은 표면적인 것이었고 이면에 구조의 문제가 있었다. 말로 때워서 되는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게 비단 우리집만의 개별적인 문제는 아닐 것이다.
 
가문 위주의 대가족 구조가 해체된 거다. 더이상 모일 이유가 없는 것이다. 예전에는 제도나 기술의 미비로 친족간에 서로서로 돕고 살아야 했다. 그러려면 가끔씩 모여서 집안의 서열을 확인하고 의사결정구조를 다지는 의식이 필요했던 것이다. 제사나 차례가 본질은 아니다. 까놓고 말해서 차례 지내면서 상차리거나 집안일이 힘든 것은 아닐 것이다. 스트레스의 근원은 서열의 확인이다. 예전에는 시집에서 도움받을 것이 많았지만 지금은 딱히 그런 필요가 없다. 그런데 자꾸 서열을 들이대니 화가 나는 것이다.
 

한국의 허례허식(虛禮虛飾) 제사상 전파

 
 
한국에서 유교식 제사가 대중화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1950년대 이후에나 널리 퍼진 것이다. 조선에서도 양반이나 화려한 음식을 차리는 제사를 지냈다. 원래 제사는 고인이 생전에 좋아하던 음식을 올리면 그만인 것이었다.  차례도 원래 간략하게 차(茶)를 올리는 예를 의미했다. 양반은 '에티켓'을 강조하던 프랑스의 귀족처럼 제사를 권력의 표현 수단으로 이용했다. 온라인게임의 비싼 아이템을 프리서버에서 손쉽게 얻어 사용하듯 조선이 무너지고 '제사'라는 권력이 대다수의 국민에게로 이동했다.
 
또 1960년대 서울상경의 분위기에서 시골의 부모와 서울에서 돈벌어오는 자식간의 가역 반응이 작용했다. 자식이 돈을 벌어 권력을 획득하는 정반응이 이뤄질수록 역반응으로 시골집의 제사상은 화려해져야만 했다. 그러다 지금의 제사상이 완성되었다. 박정희 시절에는 가정의례준칙에 관한 법률(1969)이란 것을 두어 허례허식(虛禮虛飾)을 강제적으로 통제하기도 했다. 놀랍게도 이 법률은 1997년까지 처벌조항이 있는 상태로 작동했다. 약혼 및 혼례의 방법까지 정해두었던 위헌적인 법률이었다.
 

공자(孔子)도 보면 당황할 한국의 제사상

 
 
유학의 창시자 공자(孔子)는 예법(禮法)을 강조하면서도 그 전제로써 인(仁)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먼저 자연을 복제한 인간의 본성인 인(仁)에 기초한 팀이 된 후에야 예법이 기능할 수 있다는 거다. 공자가 제사를 강조한 이유는 부모자식간에도 잡아먹는 일이 있던 비인륜적인 춘추전국시대에서 비롯된 것이다.
 
공자는 괴력난신(怪力亂神)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았다. '사람도 제대로 섬기지 못하는데 어찌 귀신을 섬기겠느냐.'고 했다. 공자는 제사를 집단을 결속하는 도구로 쓰고자 했음이다. 지금은 좀 다르지만 그 때는 그게 먹혔던 것이다. 공자의 이론에 따르면 유교는 세상 모든 것이 변한다는 '역(易)'사상에 기초하고 있다. 그가 현대에 있었다면 지금의 제사를 100% 단연코 거부했을 것이라고 본다.
 

<현대의 공자(孔子)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주자가례(朱子家禮)에 기초한 조선의 제사

 
 
조선은 송나라 유학자 주자(朱子)의 성리학 영향이 더 크긴 하다. 양반의 제사도 <주자가례(朱子家禮)>에 기초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주자가례에는 붉은 과일은 동쪽에 놓고 흰 과일은 서쪽에 놓는다는 홍동백서(紅東白西)나 대추·밤·감·배 놓는 법 따위의 조율시이(棗栗枾梨)에 대한 내용이 전혀 없다. 또 차례(茶禮)는 술 한잔, 차 한잔, 과일 한 쟁반을 차리고 술도 한번만 올리면 된다고 나와있다. 축문도  읽지 않는다.
 
그렇다. 우리는 도교와 불교가 짬뽕된 이상한 제사와 차례를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성균관 유도회에서도 이상하게 흐르는 제례(祭禮)를 의식했는지 '차례상 표준안'이라는 것을 제시하고 가족간의 화합을 도모하는 것이 본질이라는 말을 했다. 표준안도 좀 과해보이긴 하다. 우리는 본질을 생각해야만 한다. 제사와 차례의 본질은 결속 도모다. 조상에 대한 추모와 정성 표현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면 족하다. 현대 사회는 가족에 대한 결속이 최소화되고 다른 관계들이 그 자리를 메우는 형태로 되어있다.
 
제사와 차례로 더이상 서로 못살게 굴지 말고 이제는 놓도록 하자. '그래도 제사는 해야지.'라고 외치는 친족들을 보며 누군가가 인간에 대한 환멸감을 가지게 하는 것은 유학자들이 말한 바가 아니다. 질척거리지 말고 쿨하게 가자.
 

<차례(茶禮)는 개인적으로 카페에서 음료를 마시면서 경건하게 하도록 하자.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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