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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보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Toolofv 2024. 11. 6. 15:55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라는 속담이 있다. 

 

일이 이미 잘못된 이후에는 손을 써도 소용이 없거나 너무 늦음을 비판하는 속담으로, 자기가 하려는 일이 잘못되었음에도 그걸 시행하거나 그 일로 인해 일어날 결과를 모른 체 간과하다가 나중에서야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는 결말을 맞을 때도 사용된다. 사자성어로 실우치구(), 망우보뢰()가 있다. <나무위키 펌>

 


 

역사책을 보면 인간이 살아온 기록이 그렇게 계획적이거나, 다음 수를 예측하고 대비해서 움직이거나 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무수히 소를 잃고서 고쳐온 것이다. 소를 잃기 전에 외양간을 고치면 어떻게 될까?

 

대비할 수 있는 위험과 대비할 수 없는 위험이 있다고 하자. 대비할 수 없는 위험은 필연적이다. 꼭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겪게 된다. 그 것이 역사책에 기록된다. 위험을 겪어낸 것이 역사책에 기록된 누군가가 아니더라도 그 사건이 기록되는 것은 어느 정도 필연이다. 

 

대비할 수 있는 위험의 경우는 어떨까? 인간이 대비할 수 있는 차원의 위험이어도 결국 그 것을 겪어내고야 만다. 어떤 현인이 미래를 예측해서 위험을 피한다. 그런데 위험을 예방하고 피했는데, 그 일이 벌어졌을 것이라는 확신은 가질 수가 없다. 겪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렇게 꼭 대비했어야 했나? 안해도 안 벌어졌을 거다."라는 반대파의 논리가 나오고, 이 것을 누구나 납득하도록 증명할 수는 없다.

 

결국 이 사건에서는 피했지만, 반동을 겪고 다른 사건에서 이 위험을 몸으로 겪게 된다. 그게 역사책에 기록된다.;; 이러나 저러나 기록되는 것이다. 피한 위험을 역사책에 기록하기는 어렵다. 높은 확률로 벌어질 일이라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납득했다면 몰라도 말이다. 현실에는 필연인지 알지도 못했지만 잘해서 피한 무수한 위험도 있을 것이다. 기록되지 않았을 뿐.

 

결국 역사책에 기록된 것은 무수한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의 역사다. 누가 겪었는지 차이는 있을 수도 있지만. 하지만 이렇게 설명하고 끝내기에는 부족하다. 좀 더 깊게 보면 이 위험의 총량은 보존되었고, 결국은 겪어야 할 위험은 겪게 되는 것이다. 그 토대에는 지리, 자원, 정세 등의 물리적인 인과관계가 있을 것이다. 어쨌든 간에, 이 역사책에 기록된 것들은 필연적인 변화, 사건이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름은 달라도 벌어질 일이 벌어져 왔다. 꼭 위험에 관한 것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가만 보면 이 소를 잃기 전 외양간을 고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이걸 납득시킬 수가 없기 때문이다. 외양간을 미리 고쳐도, 리스크가 쌓이고 언젠가는 겪는다. 청나라의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의 태평성대가 그렇다. 유럽은 중세에 어둠의 자식들이었는데 소를 서로 훔쳐가고, 잃기를 반복하더니 외양간을 튼튼히 짓게 되었다. 외양간의 기초 재료는 다른 데서 받아들이고 말이다. 그게 돌고 돈다. 외양간 건축의 다음 스테이지는 유럽을 떠났지만.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은 역사 단위에서는 필연이다. 오히려 평화롭게 소를 지킬 수 있던 것이 세월이 흐르면 외양간을 발전시키지 못한 결과가 되어 청구서 폭탄을 맞는다. 소를 잃을 만한 무수한 위험과 상호작용해야한다. 잃어 버릴 소가 많지 않았던 게 오히려 외양간을 발전시키지 못한 결과로 오기 때문이다. 무수히 잃어 버릴 소가 없음이 오히려 문제였다. 일단 소를 무수히 확보한 다음, 지키는 과정에서 외양간이 튼튼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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