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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olofv 님의 블로그

미국의 남북전쟁(1861 ~ 1865)은 북부주와 남부주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발발한 전쟁이다. 산업화된 북부주에 1848년의 유럽 혁명에 따른 독일, 아일랜드 등의이주 노동자가 유입되면서 인구가 늘었고, 새로운 주들도 편입됨에 노예제를 통한 대규모 농업을 하던 귀족 사회 남부주와의 위태로운 공존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1861년의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거의 북부표만으로 링컨이 당선되자 남부는 이에 불복하고 전쟁이 일으키게 된다. 4년간의 전쟁을 거치며 결국 북부의 연방 정부가 승리를 거뒀다. 북부군이 남부에 주둔하면서 군정을 할 때만 해도 흑인 노예가 해방되어 드디어 흑인의 인권이 향상하는 듯 보였으나, 이후 러더퍼드 B. 헤이스의 대통령 당선 후, 남부는 1877년의 타협으로 북부군이 철수하자마자 그 전..

군사력은 약해도 경제 강국이었던 송나라 송나라(960~1279)는 5대10국시대 후주(951~960)의 장군 조광윤이 제위를 선양받아 세운 나라다. 송나라 때 거란의 요나라(916~1125), 여진의 금나라(1115~1234), 전 세계를 호령한 몽골의 원나라까지 무력이 강한 나라들과 같이 존속했던 한족의 나라였다. 워낙 강한 나라들과 같이 존재해서 군사적으로 나약한 이미지가 있지만 양쯔강 이남의 강남 지역을 개발하면서 이룬 생산력 증대와 그에 따른 경제, 상업, 무역, 외교가 발달했던 풍요로운 나라였다. 주식회사의 초기 모습은 송나라때 나왔다고 하며, 3대 발명품인 나침반, 화약, 인쇄술도 송의 유산이다. 이러한 송나라는 예전 당나라가 지방의 절도사에게 큰 코를 다쳤던 전례를 피드백하여 문치주의를 강..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중동 세계의 갈등은 역사가 깊다. 2023년 하마스가 선전포고없이 이스라엘에 기습침공을 가했다. 중동에서의 역사에 대한 흐름을 보지 않고, 이 사건부터 보면 하마스란 무장정파가 마치 IS같은 테러조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IS는 이슬람에서도 배척당한다.) 실제로 과격한 것은 사실이지만, 전후사정을 알고 보면 이 바닥은 함부로 선악의 판단을 내리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싶은 미궁속이다. 또 이 과정이 아직도 꽤 긴 시간동안 지속되리란 점이 안타깝다. 유대인도 사실 그간의 서양 역사를 보면 많은 탄압을 받아왔다. 13세기 몽골이 활약할 때도 백인들은 애꿎은 유대인들을 털었으며, 무슨 일만 터지면 유대인은 쪼이는 닭이었다. 러시아의 포그롬(18..

화북지방의 전진 전진의 부견(357~385 )이 부건 사후, 황제에 오른 부생(355~357)을 보내고(?), 황제에 올라 내부를 다지고 영토를 차츰차츰 키워가면서 화북지방의 대세는 전진이 장악한다. 사마씨의 서진 멸망부터 복제된 패턴대로 5호16국시대 각 국가의 최대의 적(?)은 가족 및 친족이었다. 물론 이후에도 이 문제는 근대 이전 국가에서 불거질 경우도 있었지만, 5호16국시기에는 아예 갈등을 조정하거나, 최소화하는 장치가 아예 없었던 듯. 물론 부견부터가 부생을 쳐내고 오른 황제였던 것도 있지만 367년에 전진의 황족들이 대규모 반란(오공의난)을 일으켰다고 한다. 368년에 부견은 반란을 평정하고 전연과 동진의 낙양전투(369)에 개입해 전리품을 얻고 전연을 지원한다. 이 당시 부견에게는 왕..

삼국지 위촉오시대를 사실상 끝내고, 중원을 장악한 것은 조조의 위나라였다. 조씨의 위나라는 사마씨에게 넘어갔고, 팔왕의 난과 영가의 난을 거쳐 서진은 멸망하고, 사마씨는 강남쪽에 겨우 명맥을 이을 뿐이었다. 당시 5호(흉노, 선비, 저, 갈, 강) 의 남하는 유럽의 게르만족 이동과 시기상 겹친다. 기후위기에 따른 먹고사니즘에 의한 인구이동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또 유럽에도 이 5호16국시대의 기록이 남아있다고 하는데, 훈족때문에 고생했다고 기록되어있다. 5호16국시대의 주요 국가와 시기, 전체 구도를 보는 데에 초점을 두고 작성하려 한다. 간쑤성 일대 - 전량(301~376) : 한족 장궤 장궤는 서진의 양주자사였고, 당시 양주는 이민족들이 날뛰던 무대였는데, 선비족을 격파하고 70년이 넘는 기간을..

고구려와 중원의 조위와의 전쟁, 그리고 사마씨의 서진 삼국지 위촉오 시대를 끝내고, 조조는 중국을 다시 통일했다. 위나라(조위, 220~265)는 촉의 제갈량 사후, 남서쪽의 널널해진 정세와 맞물려, 북방에 신경을 쓸 수 있게 되었고, 조위의 사마의는 고구려의 동천왕(227~248)과 선비족을 꼬셔, 요동지역과 낙랑군, 현도군에 위치했던 공손씨의 동연을 치게 된다.(234~239) 공손씨의 동연이 제거된 후, 고구려는 완충지대를 잃고 조위와 국경을 맞대게 되었고 새로운 긴장구도가 조성되었다. 동연을 멸한 후, 전리품에 불만을 가진 고구려는 서안평(현 단둥시)을 공격하였다(242). 이로 인해 조위의 관구검이 선비, 오환족을 동원하여 고구려를 침공했다(244). 고구려는 양맥 등에서 관구검의 조위군과의..

훈족의 등장 유목민의 역사는 무언가 짙은 안개가 드리워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훈족은 문자체계가 없었다고 하며, 당연히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흉노족이 활동하던 현재의 카자흐스탄 발하슈호 지역에서부터 유라시아 스텝지대를 거쳐, 흑해연안에서 고트족의 이동을 강제하며 유럽에 등장하기까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현재 고고학과 유전자계통분석 연구결과에 따르면, 훈족은 흉노족과 스키타이인과의 혼혈이라는 설이 유력하다고 한다. 사실 유목민족의 혈통은 워낙 여타 유전자와 섞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에 DNA의 유사성으로만 판단하는 관점은 핵심적인 증거가 될 수는 없는 것 같다. 생활양식과 문화, 조직체계 등을 종합적으로 봐야하는데, 학계에 관련 연구자료가 부족한 듯 싶다. 여타 유럽과 중국에서의 기록 등..

흉노족, 세력으로서의 등장 사마천의 사기에 흉노는 하나라의 후손으로 서주를 밀어버린 훈육과 험윤이 조상이라고 한다. 기원전 4세기말 전국시대에 흉노는 진나라를 공격했다.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은 몽염을 보내 오르도스 지역의 흉노를 축출하고 만리장성을 쌓았다.(BC215) 묵돌 선우가 아버지 두만 선우를 죽이고 선우에 등극했다.(BC209) 묵돌은 명적(소리나는 화살)을 이용해 자신이 명적을 발사하는 대상에게 일제히 사격을 하라고 하였다. 자신의 아내든 누구든지 간에 명적이 도달하는 대상에게 사격을 하라고 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지시대로 하지 않으면 무참히 부하를 죽였다고 한다. 그 방법으로 아버지를 제거하고 흉노족을 통합한다. 당시 중국은 초한전쟁시대(BC206~BC202)였는데 유방이 한나라를 세워..

민족주의와 국가, 국가의 법인격 민족을 기반으로 한 국가라는 개념은 동아시아에서는 익숙한 개념일수도 있는데, 유럽에서는 사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약 250년전?)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 민족주의라는 개념은 세계를 발견한 후에야 온전히 생길 수 있는 개념이다. 현행 법 체계는 법인격을 인정하고 있다. 이 법인격이라는 것은 뭐 법률적으로는 갑설, 을설하며 논쟁이 있을 수도 있으나, 법인이 외부에 대해 의사결정의 한 단위로 작동할 수 있는 구조를 가졌을 때, 의사결정의 주체로 인정된다는 것이다. 법인의 대표이사나 직원들은 바뀔 수 있어도 법인의 의사결정은 연속성을 가지고, 마치 자연인과 같은 권리와 의무가 발생한다. 국가에도 연속성있는 의사결정행위가 있고, 외부(세계)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국가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