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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olofv 님의 블로그
한국의 YH무역 사건(1979) 본문
밤이 깊을수록 새벽은 가깝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YH무역 사건이란?
가발업체이던 YH무역에서 여성노동자들이 회사의 위장폐업조치에 항의해 회사 운영 정상화와 노동자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서울시 마포구 도화동 신민당사(현 SK허브그린 오피스텔)에서 농성을 벌인 사건이다. 당시 혹독했던 유신정권의 중앙정보부가 개입된 경찰의 '101호 작전'으로 1,200명의 경찰기동대가 투입되었고. 신민당사는 처참한 폭력 진압의 현장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여성노동자 '김경숙'이 둔기에 의한 치명상을 입고 사망했다. 이 사건은 이후 부마항쟁의 단초가 되었다.(1979)
당시 가발산업의 변화와 YH무역
YH무역은 뉴욕의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한국무역관 부관장이었던 장용호가 1965년에 설립한 회사다. 당시 중국봉쇄의 영향으로 이탈리아 가발산업이 몰락하는 와중에 미국에서는 흑인들의 가발 수요가 높았던 듯 하다. 미국 내 유태인들이 조용히 이어가던 가발산업에 장용호가 뛰어들었고, 한국 전체 수출의 10%를 차지하는 수출품목이 된다. 당시 인모는 어려운 형편의 가정에서 여성들이 급전을 마련하는 수단이기도 했다고 한다.(머리카락을 강제로 잘라가는 삭발도둑도 있었다고;)
그러나 미국 지사로의 외화 반출과 다른 업종으로의 무리한 사업 확장, 경영 부실 등이 쌓여 YH무역은 점차 기울어 갔고, 한국에서의 노동자들은 저임금 노동과 불법적인 해고, 전출, 감봉 등의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결국 1979년에 폐업을 공고하기에 이른다.
YH무역 노동조합
1975년에 전국섬유노조 산하에서 YH무역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여러 방해들이 있었지만 여차저차 설립신고를 마치고 지속적인 노사협의 활동을 시도했다. 노동자들의 지지속에서 상여급 지급, 명절 보너스 등의 성과를 얻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김경숙, 박금순, 이옥자, 전정숙 등이 해고되었다 복귀한 것으로 보인다. 가발산업은 70년대 후반기에는 사양산업이 되었고, 방만한 경영에 맞물려 YH무역의 상태는 악화되었다.
1978년에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는 임금을 받으면서도 공장운영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회사의 정상화에 힘썼다. 회사는 1차 폐업공고를 취하하는 듯 보이더니, 1979년에 재차 폐업을 공고한다. 이에 노동조합은 마포구의 신민당사에서 철야농성투쟁을 하기로 결정했다. 신민당의 김영삼 총재도 신민당사를 집회 장소로 내어주기로 한다.
노동운동가 김경숙(1958~1979)
김경숙은 1958년 6월에 전라남도 광산군 비안면(현재 광주광역시 광산구 비아동)에서 장녀로 태어났다. 그녀가 8살되던 해에 부친이 사망했고, 초등학교 6학년이던 1971년에 광주 누에고치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상경해 여러 일들을 하였고, 1976년에 YH무역에 입사했다.
그녀는 1977년에 YH무역 노동조합 대의원으로 선출되었고, 1978년 조직부 차장 등의 활동을 했다. 같은 해 조합이 설립한 '녹지야학'에서 공부를 하고, 수료했다. 1979년에는 '동일교회'에서 사회과학을 배우기도 했다고 한다.
101호 작전 - 폭력 진압
YH무역 노동조합이 신민당사에서 철야농성을 시작하고, 사건은 사회의 중심부로 진입하게 된다. 신민당은 사회노동문제 대책위원회를 구성하면서 국회에서 보사위원회 소집을 요청했다. 보사위 소집건은 여당의 반대로 무산되었고, 유신정권은 신민당 당사를 에워싸고, 노동자들을 해산시키라고 요구한다.
1979년 8월 11일 새벽 2시에 이 '101호 작전'이 실행된다. 고가사다리차, 물탱크차, 조명용 소방차 등을 동원했다. 1,200명의 경찰기동대가 무려 정당의 당사에 진입해 조합원들과 신민당 국회의원, 당원, 기자들에게 폭력을 가하고 끌어냈다. 그 시간은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김경숙이 신민당사 건물에서 추락했다. 그녀의 나이 21살이었다.
당시 경찰은 그녀가 자해한 후에 스스로 투신했다고 하였으나, 2008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서 쇠파이프 및 날카로운 것으로 가격당한 치명상이 있었다고 발표했다. 또 강제해산은 김재규가 주도한 청와대 회의에서 결정하고, 박정희의 재가를 받아 실행한 것이라고 밝혀졌다.
이 사건 이후 조합 간부들과 도시산업선교회 등 관련자들이 구속되었으며, YH무역의 노동자들은 알게모르게 취업제한을 당했다. 230여명의 노동자들은 귀향 조치되었고, 그들의 부모에게 '조심'하라고 했다고 한다. 김경숙의 장례식은 경찰의 입회 하에 유족들에게 인계되어 3분만에 치뤄졌다. 현재 YH무역의 건물은 '원진레이온 사태'로 촉발돼 설립된 '원진재단'의 부설 병원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공덕역 부근의 예전 신민당사에는 동판이 새겨져 있다. 이 불꽃은 부산과 마산에서 옮겨붙어 타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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