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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은 3D업종이다. 본문

역사

조선 왕은 3D업종이다.

Toolofv 2024. 11. 17.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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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을 생각해보자. 퓨전사극 드라마에 간간이 등장하는 소재처럼 어느 날 갑자기 조선시대 왕이 된다면 어떨까?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누릴 거 누리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왕은 생각보다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살 수가 없다. 마치 바둑에서 주어진 바둑판에 어디에 두느냐는 자유롭게 361개의 둘 곳중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지만, 이기려면 자유롭게 두지 못하는 것과 같다. 스타크래프트라도 어떤 건물을 지을지, 일꾼은 얼마나 뽑을지는 나의 선택이지만, 이기려면 원하는 대로 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조선 왕은 잠을 6시간 이상 잘 수 없었다고 한다. 새벽 5시쯤 일어나 종실 웃어른에게 문안(그냥 잠옷입고 문안하는 게 아니었겠지..)을 하고, 아랫사람에게 문안을 받았다. 아침먹고 경연(공부)하고 국정에 맞는 행사와 의식에 참여했다고 하며, 점심먹고 각종 업무, 의례, 야간숙직자 확인하고 저녁 식사 그 후, 상소문 보기,  책읽기 등으로 하루를 마치고 늦게 잠이 들었다고 한다. 

 


 

 

조선왕조는 고려나 그 전 국가들보다는 중앙집권화되어 있긴 했지만, 예전부터 이어져온 왕이란 직업의 특성상 집단의 종교와 제사를 챙기는 역할이 있었다. 외교할 일이 있어야 왕의 존재감이 부각되는데, 한국은 외교상대가 될 나라가 적었다. 자연 재해가 일어나 농사를 망쳐도 왕의 잘못이란 인식이 있었고, 왕의 입지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사대부들도 오랜 시간 해오던 게 있으니, 왕한테 조아리면서도 찜쪄먹는 스킬들이 있었고 기세 등등할 때는 왕도 눌려보이는 상황까지 있을 수 있었다. (feat. 경종.. 물론 신임옥사(1721~1722)가 있었다.)

 

여기에는 왕의 출신이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이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닌게, 적장자 출신이 아닌 왕이 오히려 업적을 남기는 케이스가 많았다는 게 이를 증명한다. (feat. 세종, 성종, 선조, 고종 등. 선조와 고종은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는데 객관적으로 그래도 할 일은 했다고 본다. 물론 이순신 내친 것은 좀 심했지...)

 

한명회니 대윤, 소윤이니 외척들이 있을 때, 왕 자신의 입지를 위해서는 잠시 수그리고 들어가야 할 때도 있었고(예종, 성종, 명종 때 을사사화(1545)), 대신들이 누구누구 맘에 안든다고 할 때, 받아줬다가 옥사사건으로 비화되어 생각도 없었던 사람의 목을 잘라야 하는 일도 많았다. 이러니 왕노릇 어디 해먹겠는가? 누구 말 조금만 들어주다가 보면 생각지도 못한 누군가가 목이 잘리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나중에는 각잡고 드라이브하는 모습까지도 나온다(선조 기축옥사(1589), 숙종 환국정치(1680~1694) 등).

 

물론 시대, 환경상 어쩔 수 없어 그런 면도 있는 것 같다. 이징옥의 난(1453), 이시애의 난(1467), 이괄의 난(1624) 등 각종 난이라도 나면 궁궐에서 노심초사 전전긍긍해야 했고, 백성들의 민심에 대한 압박을 받았다. 그렇다고 누군가가 전공을 올리는 것도 탐탁치 않아 했다. 임진왜란(1592~1598) 때 개판의 원흉이던 제승방략 체제도 그러한 반란 견제가 반영된 측면이 있다(제승방략은 모여서 그래도 싸운 게 신기하다). 인조 때도 러시아 정치장교같은 감시제도가 있었다. 그래도 조선 나름의 삼권분립 시스템을 지킨 왕들은 좀 더 점수를 줘야 한다.

 

병자호란(1636)이 끝나고 나서는 조선의 유교정치 시스템을 견제하려는 청나라의 입김이 들어왔다. 왜냐하면 청나라도 황제 맘대로 하고 싶은데, 조선이 사대부와 공론 정치를 한다는 점으로 신하들이 레퍼토리삼을까봐다. 숙종 때의 환국정치를 지나, 영조 때 탕평책은 이러한 분위기에 이루어진 측면이 있다. 정미환국(1727)과 기유처분(1729)으로 탕평파란 왕당파가 등장했고, 붕당 정치는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다. 영조, 정조 시대를 지나 삼권분립 시스템이 망가져 세도정치의 배경이 되었다.

 


 

 

근현대시대의 독재자도 초반에 좀 해보다가 갈수록 난폭해지는 패턴이 있다. 처음에는 힘이 있고, 의지를 갖고 해보다가도 나중에는 힘이 떨어지면서 부하를 견제하고, 권력에 집착하는 데에는 무언가 필연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 것은 누구라도 빠져나갈 수 없는 수렁이다. 거기에는 자식이고 뭐고도 없는 것이다. 독재자가 망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모든 의사결정을 혼자서 할 수는 없다. 나폴레옹만 해도 빠른 "의사결정/초"를 자랑했으나, 점차 그 스트레스를 못 이기고 건강이 상했으며, 잠깐 쉬다 나온 결과 워털루 전투(1815)에서 발린 것이다.

 

조선 왕은 3D업종이었고, 창업군주와 그 인접 세대의 왕을 제외하면 새로운 물이 안들어오는 환경에서 바깥을 경험하기도 쉽지 않고, 궁궐이란 고립된 환경에서 힘들게 살았다. 필요한 것은 다 주지만 감옥에 갇혀 사는 것과 다른 점이 있을까? 이는 봉건 계급이라기보다, 국민들이 '너 왕해라.'하고 힘든 일을 맡긴 것에 가깝지 않나라고도 생각해본다.

 

 

 

<조선 왕 계보도 - 출처 : doop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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