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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루터 킹과 말콤 엑스 - 흑인 민권 운동(1950~1960년대) 본문
마틴 루터 킹은 인종차별의 분진이 자욱한 미국에서 몽고메리 버스사건이 불이 붙었을 때 'NACCP(전미 유색인 지위 향상 협회)'를 통해 흑인들의 구심점이 된 인물이다. 이후 그는 '흑인 민권 운동'을 이끄는 국제적으로 유명해진 지도자가 되었다. 비교적 온건한 '비폭력 시민불복종'을 필두로 남부의 흑인들을 대표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이에 반해 말콤 엑스는 마틴 루터 킹과 비교하면 어린 시절 꽤 굴곡진 삶을 살았다. 북부의 네브래스카 오마하에서 태어나 미시간의 랜싱에서 자랐다. 말콤 엑스는 교도소 복역에서 알게된 '네이션 오브 이슬람'에 소속되어 두각을 드러낸다. 말콤 엑스가 출소한 후 그의 행보에 대해 당시 미국 언론은 마틴 루터 킹의 노선과 반대로 폭력적인 노선을 주장하는 문제아 취급을 했던 것 같다.
마틴 루터 킹과 말콤 엑스로 대표되는 흑인들의 노선은 서로의 영향을 받으며 상승작용을 하는 상호보완적인 존재였다. 후대가 어떻게 평가하든 현실적으로 서로가 할 수 없는 일들을 보완해주었다. 후반부의 말콤 엑스는 조금 더 통합적인, 국제적인 인권 문제를 보는 '마틴 루터 킹'이 되었고, 후반부의 마틴 루터 킹은 미국의 기존 구조 안에서 경제, 빈곤, 본질적인 인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닫고 미국을 애초에 '병든 사회'라 칭하는 등 새로운 '말콤 엑스'가 되어 근본적인 개혁을 외치게 된다. 둘은 다른 경로로 세계를 발견한다.
이 변화는 미국의 주류 백인(그들이 진보적이든 보수이든)들의 예상이나 수용점에 급격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만한 행보였다. 당시 미국의 정치권에서도 흑인들의 투표권으로 말미암은 세력의 힘을 인식해 민권법 제정에도 힘을 보탰지만 어떤 한계선이 있었다. 빌어먹을 인종주의다.
역사의 법칙일까? 기득권 세력에 대항하는 새로운 세력의 지도자는 '죽음'으로써 신세력을 더 깊게 묶어내고 후대에 그들을 복제해낸다. 마틴 루터킹과 말콤 엑스도 마찬가지로 세상을 바꿨지만 결국 암살당해 생물학적 죽음을 맞이한다. 하지만 후대에 전해진 그들의 에너지는 아직도 존재하여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
마틴 루터 킹은 1929년 조지아 애틀란타 주에서 태어났다. 당시 남부 흑인들의 사정보다는 조금 더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 아버지의 영향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기독교를 접하고 신학을 공부했다. 평온한 삶 속에서 불현듯 나타나는 인종차별의 장면에서 분노와 의구심을 가지곤 했다. 이에 당당하게 물러서지 않고 대응하는 아버지의 태도가 그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로자 파크스가 백인에게 좌석 양보를 거부한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사건(1955)에서 남부 흑인들의 지도자로 추대되었으며, 그는 '소로'와 '간디'의 비폭력 투쟁의 계보를 잇고 그 것을 설파한다. 마틴 루터 킹은 집 앞에 폭탄을 배달받기도 하고, 암살 위협을 겪는 등의 탄압과 위험을 겪으면서도 'SCLC(남부 기독교 목회자 협회)'를 조직해 활동을 이어 갔다.
그는 기존 미국의 구조에서 백인 우월주의를 타파하고 백인과의 공존을 꾀하면서 흑인의 인권 향상을 외쳤다. 당시 미국 정치권에서도 '분리하되, 평등'이라는 말뿐인 교묘한 차별논리를 제공하는 분리 정책을 위헌이라 판결한 연방대법원의 '브라운 대 토피카 교육위원회 사건'에 힘입어 흑인들의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고, 1957년에 남부 의원들의 반대를 거친 법안(누더기;)이나마 통과되기도 한다. 그러나 학교 등의 공공시설의 분리 정책은 위헌이라는 판례가 생겼어도 현실적으로 차별은 없어지지 않고 각종 린치가 난무했다.
마틴루터킹은 FBI의 '존 에드거 후버' 국장(종신토록 해먹음)의 감시와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폭력, 경찰의 불합리한 조치와 맞물려 사소한 일에도 투옥되는 등 조직적인 탄압을 당하게 된다. 백인 전용 식당(?)에서 흑인의 주문을 안 받을 경우 계속 앉아서 저항하기로 한 싯인 운동(1955~1960)에서 경찰에 체포되어 마틴 루터 킹만 4개월의 강제노역형을 받기도 한다.
1960년 대선에서 흑인들의 표심의 영향력이 확인되자 주류 정치권에서 흑인들의 목소리를 외면할 수만은 없게 되었다. 1963년 앨라배마 주의 행진에 이은 워싱턴 D.C.에서의 '일자리와 자유를 위한 행진'에서 그 유명한 'I have a dream' 연설이 나왔다.
갑작스런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1963)으로 혼란스러운 정국 속에서도 민권법은 드디어 1964년에 통과하게 되고 이에 대한 공로로 마틴 루터 킹은 노벨평화상을 받는다. 하지만 그는 법 제정 이후에도 현실에서 나아지지 않는 흑인의 삶을 절감했고 말콤 엑스와의 연대를 모색했다. 원래 둘은 서로를 의식하고 있었지만 적대적인 사이라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마틴 루터 킹은 흑인들이 경제적으로 힘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인식했고, 마틴 루터 킹도 말콤 엑스와 다른 방향으로 진입했지만 마찬가지로 세계를 발견하고 미국이라는 국가의 문제를 자각한다. 현재 들어온 물결만으로는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물리적 장벽을 마주한 것이었다.
말콤 엑스(Malcolm X)
말콤 엑스는 미국 북부 네브래스카 주 오마하에서 태어났다.(1925) 외할아버지는 백인이며 말콤 엑스는 어린 시절부터 박해를 받으며 자랐다고 한다. 목사인 아버지 '얼 리틀'이 백인이 저지른 방화 사고로 죽고, 어머니가 정신 병원에 입원하는 등 다사다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공부를 잘했다고 하는데 장래희망을 묻는 선생님에게 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가 현실적으로 힘들 것이란 이야기를 들었다는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청소년기에는 뉴욕, 시카고, 보스턴 등에서 구두닦이, 샌드위치 판매원 등의 일을 했다고 한다. 마약 밀매나 포주 등의 일에도 손을 대기도 했고, 백인 여성 2명의 동업자와 총기 강도 범죄를 저지르고 8년의 기간동안 수감되기도 한다. 백인 여성의 권유로 시작한 일인데 그 2명은 쉽게 훈방조치되었다고 한다.
교도소에서 존 빔비라는 사람을 만나 공부를 시작하고 흑인민족주의, 이슬람교 단체이던 '네이션 오브 이슬람'을 알게 되었다. 이후 말콤 엑스는 가석방 후에 두각을 드러낸다. 당시 말콤 엑스는 감옥에서 이슬람교의 가르침을 처음 들었을 때, '눈이 부셔서 뜰 수 없는 빛'을 보는 것 같았다고 한다. 말콤 엑스의 노선은 마틴 루터 킹과는 다르게 미국이라는 구조 '안'에서의 공존이 아니라, 흑인민족주의를 기반으로 한 흑인 국가를 만드는 것이었으며 법이 흑인들을 폭력으로부터 지켜주지 못한다면 '무기'를 들어야 한다고 하기도 했다. 이 노선은 백인 사회와 당시 흑인 민권 운동의 비폭력, 공존 노선과도 맞지 않아 모두에게 공격을 받았다.
북부 사회는 남부보다 인종차별이 덜한 편이었다고 한다. 마틴 루터 킹도 북부에서 남부로 가는 열차를 타는 중에 말한 적이 있다. 처음에는 마주한 문제가 조금 달랐던 거다. 말콤 엑스의 노선은 어떻게 보면 마틴 루터 킹의 후기 행보와 맞아 떨어지는 면이 있었다. 이를 보면 남부 사회에서의 인권 문제 외의 다음 단계 혹은 더 깊은 부분의 원인으로 경제적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말콤 엑스는 미국 언론에게 '증오를 낳는 증오, 극단주의자, 흑인 KKK단' 등의 규정 공격을 당했다. 언론이 말콤 엑스의 강경한 말을 더 증폭시킨 점이 있다. 이로 인해 말콤 엑스의 존재는 마틴 루터 킹의 온건 노선을 백인 사회가 그나마 받아들이게끔 하는 유도장치가 되기도 했지만 그는 상당한 배척을 받게 된다.
위에서 말한대로 그의 후기 행보는 변화를 보였다. 1964년에 '네이션 오브 이슬람'을 탈퇴하고, 메카 성지순례를 통해 세계를 발견했던 거다. 이 문제가 흑인과 백인만의 문제가 아니란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후 그는 민권운동가들과의 협력을 하며 순화된 어조를 보이며 무작정 흑백분리주의를 설파하지 않고, '투표권'을 총알로써 사용해야 한다는 비교적 온건한 노선으로 바뀌게 된다. 그는 흑백의 문제에서 보편적인 '인권'을 발견하는 방식으로 세계를 본 것이었다.


친애하는 동료 미국인 여러분:
오늘, 저는 미국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시위로 남게 될 이 행사에 참여하게 되어 기쁩니다.
100년 전, 위대한 미국인이 노예 해방 선언에 서명했습니다. 이 중요한 법령은 커다란 희망의 등불이 되어, 불의의 불에 타고 있는 수백만 명의 흑인 노예에게 자유의 빛을 비추었습니다. 하지만, 100년이 지난 오늘날, 흑인은 여전히 자유롭지 못합니다. 100년이 지난 오늘날, 흑인의 삶은 여전히 인종 차별과 억압의 족쇄 속에 갇혀 있습니다. 100년이 지난 오늘날, 흑인은 미국 사회의 한가운데서도 외딴 섬에 갇혀 있습니다. 100년이 지난 오늘날, 흑인은 여전히 풍요로운 사회에서 빈곤의 가장자리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100년이 지난 오늘날, 흑인은 여전히 미국의 약속을 실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날 이 수치스러운 상황을 폭로하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어떤 면에서 우리는 우리의 국민과 헌법과 독립 선언의 경이로운 약속을 지키도록 강요하기 위해 우리 국가의 수도에 모였습니다. 이 문서들은 모든 미국인에게 생명, 자유, 행복 추구의 권리를 약속했습니다.
오늘날 분명히 하여야 할 것은, 미국이 그 약속을 이행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미국은 시민권에 관한 한 그 귀중한 어음에 서명했지만, 흑인 시민들은 그 어음이 '불충분'이라는 표시와 함께 되돌아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의의 창고에 자금이 부족하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어음이 요구하는 것, 즉 자유와 정의의 부를 요구하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우리는 또한 이 신성한 장소에서 미국의 긴급한 상황을 알리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이제는 어둠에서 밝음으로 올라설 때입니다. 이제는 인종적 정의의 문을 열 때입니다. 이제는 우리 국가를 인종적 불의의 모래에서 형제애의 반석으로 이끌 때입니다. 이제는 정의를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현실로 만들 때입니다.
이제 이 과정에서 우리의 정당한 위치를 얻지 못한다면, 미국은 결코 평온을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정의의 날이 밝아오지 않는 한, 폭풍과 회오리바람의 날은 계속될 것입니다. 1963년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흑인이 정당한 시민권을 얻기 전에는 나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폭동의 태풍과 경찰의 잔인함에 의해 가로막히지 않고 계속 행진해야 합니다. 우리는 동등한 권리를 얻기 전까지 결코 만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친구들이여, 우리들은 어려움과 좌절의 골짜기를 통과하고 있지만, 저는 여전히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미국의 꿈 깊숙한 뿌리에 뿌리내린 꿈입니다.
저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젠가 이 나라가 일어나서 그 의미를 실현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이 진리를 자명한 것으로 여기는 나라 말입니다.
저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젠가 조지아의 붉은 언덕에서, 옛 노예의 자녀들과 옛 노예 소유주의 자녀들이 형제애로 손을 맞잡고 함께 앉을 것입니다.
저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젠가 불의와 억압의 뜨거운 열기로 신음하는 미시시피 주조차도 자유와 정의의 오아시스로 변할 것입니다.
저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 네 자녀가 언젠가는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으로 평가받는 나라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저는 오늘 꿈을 꾸고 있습니다.
저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젠가 알라배마에서, 인종차별주의자들과 주지사의 입술에서 "거부"와 "무효화"라는 단어들이 흘러나오는 바로 그 알라배마에서, 흑인 소년 소녀들이 백인 소년 소녀들과 형제자매처럼 손을 맞잡는 날이 올 것입니다.
저는 오늘 꿈을 꾸고 있습니다.
저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젠가 모든 계곡이 높아지고, 모든 산과 언덕이 낮아지고, 거친 곳이 평탄해지고, 구부러진 곳이 곧아질 것입니다. 그리고 "주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사람이 그것을 함께 볼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희망입니다. 이 믿음으로 남부에서 북부로, 서부에서 동부로 자유를 전파할 것입니다. 이 믿음으로 우리 모두가 자유로워질 그날이 올 때까지 함께 일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싸우고 함께 감옥에 가고 함께 자유를 위해 서 있을 것입니다.
그날이 오면,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이 새 의미로 함께 노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 조국, 그대는 내게 달콤한 땅, 자유의 땅이여, 내가 노래하리라. 조상들이 죽어간 그 땅, 모든 순례자의 자랑, 모든 산악에서 자유의 울림이 퍼지리라."
그리고 미국이 진정으로 위대한 나라가 되려면, 모든 마을과 작은 마을, 모든 주와 모든 도시에서 자유가 울려 퍼져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곳에서 자유를 울릴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모든 마을과 모든 마을에서 자유를 울리게 할 때, 우리는 그날을 앞당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날이 오면,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흑인과 백인, 유대인과 비유대인,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이 손을 맞잡고 오래된 흑인 영가를 함께 노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침내 자유다! 마침내 자유다!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는 마침내 자유롭다!"
1963. 8. 28. 워싱턴 D.C. 마틴 루터 킹 "I have a dream" 연설문(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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