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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호16국시대 프리퀄 - 서진과 팔왕의 난, 영가의 난 (+ 고구려) 본문
고구려와 중원의 조위와의 전쟁, 그리고 사마씨의 서진
삼국지 위촉오 시대를 끝내고, 조조는 중국을 다시 통일했다. 위나라(조위, 220~265)는 촉의 제갈량 사후, 남서쪽의 널널해진 정세와 맞물려, 북방에 신경을 쓸 수 있게 되었고, 조위의 사마의는 고구려의 동천왕(227~248)과 선비족을 꼬셔, 요동지역과 낙랑군, 현도군에 위치했던 공손씨의 동연을 치게 된다.(234~239)
공손씨의 동연이 제거된 후, 고구려는 완충지대를 잃고 조위와 국경을 맞대게 되었고 새로운 긴장구도가 조성되었다. 동연을 멸한 후, 전리품에 불만을 가진 고구려는 서안평(현 단둥시)을 공격하였다(242). 이로 인해 조위의 관구검이 선비, 오환족을 동원하여 고구려를 침공했다(244).
고구려는 양맥 등에서 관구검의 조위군과의 2차례 전투에서 승리를 거뒀으나, 선비족 기병의 지원과 조위군 방진으로 비류수전투(244)에서 패배하고, 환도성을 점령당하기도 했다. 동천왕은 북옥저방면으로 1000명 정도의 병사와 처자식을 데리고 달아나야 했으며, 도성 안의 사람들은 약탈당하고, 많이 죽었다고 한다.
동천왕은 그래도 좋은 팀을 갖췄었는지, 휘하의 밀우, 유유, 유옥구 등의 활약으로 왕기의 조위군을 몰아내고 고구려를 지킬 수 있었으며(246), 15년 후 아들인 중천왕(248~270)이 고구려군을 이끌고, 양맥전투(259)에서 조위군에게 설욕하기도 한다. 이후 고구려는 5호16국시대의 혼란기에 소수림왕, 고국양왕, 광개토대왕으로 이어지는 시기에 북방정세와 긴밀한 상호작용으로 영토를 크게 확장하게 된다. 또 수나라 멸망에 큰 관여(?)를 하였으며, 당나라의 어그로를 끌어 토번 제국(618~842)이 성장하는데 영향을 주기도 한다.
고구려는 조위와의 긴장이 부각되면서, 당시 손권의 오나라(229~280)와 서로 외교를 도모했었는데, 오나라가 고구려왕을 마치 흉노처럼 선우로 책봉하겠다는 기록이 눈에 띈다.
한편, 조위의 사마의는 고평릉사변(249)을 일으켜, 대장군 조상의 파벌을 숙청하고 정권을 장악했으며 수춘삼반이라 불리는 왕릉의난(251), 관구검-문흠의 난(255), 제갈탄의 난(257)을 거친 후에도 사마씨는 정권을 유지했다. 장남 사마사에서 차남 사마소로 실권이 계승되었고, 사마소는 4대 황제였던 조모까지 살해하고, 조환(260~265)을 옹립하여 셀프로 진왕에 책봉된다. 사마염이 세자가 되어 이후 황제를 계승하기로 하였지만, 아버지 사마소가 죽자 조환의 제위를 찬탈해 서진을 건국하고 황제가 된다(265~290) .
서진의 팔왕의 난, 영가의 난
서진의 사마염은 선비족 독발부의 독발수기능의 난(270~279)을 제압하고, 오까지 멸망시키면서 삼국시대를 완전히 끝내게 된다(280). ※ 독발부 선비는 이후 후량(저족, 386~403)과 대립하는 과정에 남량(397~414)을 건국하여 5호16국시대에 다시 등장한다.
당시 후한 때부터 흉노족이 남흉노(후호한야 선우) , 북흉노(포노 선우, 46~?)로 나뉘게 되면서 남흉노는 후한의 방패막이 역할을 하였고, 북흉노는 세력이 약화되었던 것 같은데, 그 빈 공간을 선비족이 메우게 되었다. 고구려 및 여타 국가들은 북방 유목민족을 포섭해 다른 국가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얻고자 하였고, 그 과정에서 생긴 난이었던 것 같다.
삼국시대가 끝나고, 서진은 10여년간의 태평한 시기를 보낸다. 하지만 이후 조금 모자란 황제였다고 하는 2대 황제 혜제(사마충, 291~307)가 즉위하고 팔왕의 난(290~306)이라는 폭탄이 터지게 된다. 사마염이 죽고 나서 그의 장인이자 권세가였던 양준이 실권을 쥐게 되었는데, 거의 황제나 다름없었다고 한다. 이에 혜제 사마충의 황후 가남풍(290~300)이 초은왕 사마위와 회남충장왕 사마윤을 불러들여 양준 일가를 잔인하게 숙청하였다. (시어머니인 양지가 며느리인 가남풍에게 '소첩'이라고 하며 빌었다고 한다. ㄷ)
가남풍은 다시 사마량과 노신 위관을 중용하며, 계책으로 사마위가 사마량을 죽이게끔 유도하였고(291), 태자인 사마휼마저도 죽여버린다(300). 이제부터 본격적인 팔왕의 난이 시작된다. 조왕 사마륜이 가남풍과 그 일족을 제거하고 황제에 오르려 하자 이제 사마씨의 왕들이 마치 프로그래밍의 heap자료구조처럼 왕이 나갈 때(?)마다 값의 우선순위대로 재정렬되어 황제가 되려고 하는 자를 족족 제거하는 패턴이다. 그리고 이 망하는 패턴은 5호16국시대에 계속 반복된다.
이에 사실상 서진은 무너지게 되었고, 안그래도 종친위주의 지방분권으로 유지되던 국가의 구조가 급격히 해체된다.
각종 민란과 겹쳐 영가의 난(308~316)이라는 5호(흉노, 선비, 저, 갈, 강)의 대침공을 맞게 되었다. (이 때, 유럽의 게르만족의 이동과도 시기가 비슷한데, 소빙기로 인한 기근 등이 원인이라는 얘기가 있다.)
팔왕의 난시기, 성도왕 사마영의 휘하에서 명성을 얻고 독립한 흉노족 유연(304~310)이 한조 계승을 칭하고(후에 유요 때 전조(319~329)), 갈족의 석륵(후조, 319~351), 한족 왕미 등이 참여하여 서진을 멸망시키게 된다(317). 서진의 진회제(사마치, 307~311)는 유연의 한에게 낙양을 점령당한 후, 그래도 예우를 받기도 했으나 결국 끝에 치욕을 당하고 독살당하게 된다. 장안에서 마지막 황제 진민제(사마업, 313~316)를 마지막으로 서진은 끝이 난다. 이후 남쪽에 있던 사마예가 동진으로 등장한다(317~420).
서진의 멸망과 남쪽의 동진 등장, 그리고 5호의 유입으로 인해 중국지역은 대혼란기인 5호16국시대가 열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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