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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olofv 님의 블로그
민족주의에 대한 생각. 본문
민족주의와 국가, 국가의 법인격
민족을 기반으로 한 국가라는 개념은 동아시아에서는 익숙한 개념일수도 있는데, 유럽에서는 사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약 250년전?)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 민족주의라는 개념은 세계를 발견한 후에야 온전히 생길 수 있는 개념이다.
현행 법 체계는 법인격을 인정하고 있다. 이 법인격이라는 것은 뭐 법률적으로는 갑설, 을설하며 논쟁이 있을 수도 있으나, 법인이 외부에 대해 의사결정의 한 단위로 작동할 수 있는 구조를 가졌을 때, 의사결정의 주체로 인정된다는 것이다. 법인의 대표이사나 직원들은 바뀔 수 있어도 법인의 의사결정은 연속성을 가지고, 마치 자연인과 같은 권리와 의무가 발생한다.
국가에도 연속성있는 의사결정행위가 있고, 외부(세계)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국가 내부가 정렬이 되고, 회사의 직원이 외부에 대해서는 일시적으로 대표성을 가지듯, 자연스럽게 생긴 소속감, 사상이 민족주의가 아닐까?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패킷 전송에 공통되는 부분이 정해지는 것처럼 그 정도의 공통부분이 생긴 것이다. 또 한 국가로서, 다른 국가와 국가 대 국가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으면 국가인격은 존재하는 것이다.
세계라는 플랫폼 위에 국가로서 대응할 일이 없다면, 국가 내부의 신분, 계급적 질서가 강조되었을 것이고 거기에 민족이라는 동질감은 없거나, 약했을 것이다. 간부가 주적이지 뭐.
민족주의의 시대의 열기
동아시아의 민족주의는 서양보다는 개념화되어있긴 했지만, 결국 세계의 지도를 다 밝힌 후부터 온전한 민족주의가 생겼다고 볼 수 있을 것같다. 그래서 19~20세기를 민족주의의 시대라고도 한다.
유럽에서는 프랑스혁명(1789) 후 나폴레옹의 등장으로 프랑스혁명전쟁, 나폴레옹 전쟁에서 민족주의라는 개념이 등장하였다고 한다. 봉건적인 시스템하에서 성직자나 귀족, 왕은 민중을 제대로 동원할 정도로 급박한 상황에 있지 않았으며, 그냥 힘으로 밀어붙여서 동원했다. 전쟁은 귀족들이나 하는 것이었으며, 면세 등 특권은 거기에서 합리화되었다.
프랑스혁명으로 루이16세를 단두대에서 처형한 후, 주변의 절대왕정 국가들은 혁명의 열기가 번질까 우려해 대프랑스동맹을 맺고, 프랑스와 전쟁을 했다. 그 전까지는 왕의 명령으로 시작되는 의사결정구조가 당연히 더 유리하다고 생각한 것 같은데, 프랑스혁명 이후의 민족주의로 무장한 프랑스 군대는 발미전투부터 나폴레옹의 활약까지 대프랑스 동맹군을 발라버리며, 엄청난 동원력과 일사불란한 기동, 편제를 보여준다.
그 동원력의 무대에서 나폴레옹의 지휘능력이 발휘된거다. 중세의 어둠을 벗고 드디어 근대국가시스템이 등장하여 봉건국가시스템을 밀어냈던 것이다. 나폴레옹이 의도하진 않았더라도, 근대시스템의 효율성은 나폴레옹이 가는 데마다 전파되었다. 이집트만 해도 오스만의 총독이 힘을 못쓰고, 맘루크의 기득권을 깨기가 힘들었는데, 나폴레옹이 왔다간 후로(?) 무함마드 알리가 등장한다. 아랍에서도 민족으로 뭉치는 시기가 있었으며, 1848년의 유럽 혁명도 나폴레옹이 뿌린 씨앗이었다.
한국에서는 헌법 전문에 쓰여진 것과 같이 3·1운동으로 민족으로 뭉쳐 국가의 외부에 대응해 의사결정한 것이다. 국가의 수립은 누군가가 허락해줘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외부 국가에 대응하는 한 단위로 기능할 수 있다는 것은 국가는 그 순간부터 존재했다는 것이다. 미국 또한, 국가의 수립을 독립을 선포했을 때부터로 본다.
민족주의는 그냥 도구다.
영국 등 제국주의는 민족주의를 싫어했다. 식민지에서 민족으로 단결한 봉기가 계속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19~20세기의 역사가 이 민족주의로 인해 펄펄 끓었다. 물론 실제 도구의 발전, 지정학에 따른 원인이 먼저였을 수도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세계가 발견되고, 민족주의가 생긴 것일 수도 있다. 이후 이 펄펄 끓는 냄비에서 온갖 천재들이 등장했다.
민족주의가 뭐 극단적으로 전체주의로 발전할 수 있다는 말은 좀 이상하다. 민족주의는 바깥환경에 대한 내부가 구성되면서 당연히 생기는 개념일 뿐이고, 민족주의 자체가 무슨 원인이 되어 2차대전 때의 나치독일 등의 전체주의가 된다는 말은 선후가 맞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그냥 민중불신이라고 생각한다. 민중이 주도권잡는 게 싫은 귀족들이 아직도 있는 것이다.
민족주의는 국가라는 법인격으로 뭉치는 도구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물론 유고슬라비아 전쟁 등에서 민족으로 정렬된 체계가 비극을 낳은 적도 있었지만, 애초에 다른 민족, 문화권을 고려하지 않고 같은 닭장에 몰아넣은 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고 생각한다.
외계인이 침공해오거나, 기후위기로 지구가 망해먹게 생겼으면 세계시민개념이 등장하는 거다. 세계시민으로 지구의 법인격을 발견하는 것이다. 세계시민개념이 생겨도 세계시민이라는 말을 앞으로 포장하고, 뒤에서 딴 짓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도구는 쥐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쓰는가에 의해 결정되지, 도구 자체에 무언가 악의 요소가 있는 것은 아니다. 부단히 가는 것이 역사의 도도한 흐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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