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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라미 자연과 네모 인간 본문
동그라미인 존재와 네모 인식
우리는 감각기관을 통한 한정된 정보만을 자연에서 받아들인다. 우리가 인식하는 오감 정보만으로는 과연 진실이 그러한 것인지 알 수 없다. 감각기관이 받아들인 자연의 정보는 뇌의 해석을 거쳐 다시 리빌딩된다. '눈'은 카메라와 비슷하다. 물체에서 반사된 빛을 받아들여 내부에서 처리하는 과정을 거쳐 망막에 상을 구성한다. 상을 구성하는 광자의 배열, 정보는 전기신호로 변환되어 뇌에서 보정을 거친 후에 우리가 보는 이미지가 된다. 눈은 자연의 것이고 이미지센서는 인간의 것이다.
양자역학에서 '관측'이란 행위에는 극소량이라도 광자가 필요하다. 우리가 볼 수 있다는 것은 빛을 통해서이기 때문이다. 이 '관측'을 하려는 행동은 미시 세계에서 상호작용을 일으켜 현상을 왜곡한다. 이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에 의해 설명되며, 관측은 입자의 파동 함수가 특정 상태로 붕괴하게 만든다.
눈만 그런 것이 아니라 감각기관을 통한 존재와의 상호작용은 뇌가 해석한 결과다. 뇌에서 보정되어 재구성된 결과측이다.
인간이 만든 네모
위의 감각기관의 한계와 맞물려 인간의 인식은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다는 한계를 지닌다. 그럼에도 인간은 나름대로 체계를 세워왔다. 완전하지는 않겠지만 위 그림처럼 자연을 2차원의 동그라미로 비유한다면 인간의 체계는 네모의 집적이다. 처음의 원시적인 단계에서는 네모가 뭉툭하고 크기가 컸다. 인간이 이룩하고 있는 과학과 사회 등의 발전은 이 네모를 계속해서 다른 블록들과 맞물리도록 하는 전제 하에 정교하게 만들어가는 것이다. 원과 그 원을 채운 네모의 차이는 발전에 따라 줄어들게 된다. 네모를 쌓아가는 과정에서 반복적인 실패를 겪어왔다. 그냥 설계해서 한 번에 완성 이런 것은 없다. 블록을 만들어 연결시키는 데에 시간의 압박과 경쟁을 통해 더 정교해졌다. 실제로는 이동수단, 통신수단의 혁명, 제도의 발전 등 집적이 다중으로 긴밀하게 얽혀있다.
동그라미가 있다.
인간이 세운 체계들의 블록들이 얼기설기 이뤄진 중간에 태어나 사람들은 동그라미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에 조금씩 멀어질 수도 있다. 전체 블록이 세운 모양을 보지 않고, 어떤 한 블록에만 열중할수록 그렇다. 그렇게 되면 동그라미와 네모의 차이를 메우는 것에 대해 손해보는 비용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전체 기승전결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원래 추가적인 비용을 투입해 메워야 되는 것이었다. 무오류를 지향하는 것보다 적극적인 오류시정이 중요하다.
처음 일을 착수하게 되면 동그라미와 네모는 당연히 맞물리지 않는다. 차이도 크다. 시행착오를 통해 네모를 조정해서 차이를 줄여가야 한다. 그러한 시행착오를 통해 정교한 네모를 구성해도 원과의 차이가 '0'이 되지 않는다. 이는 수학에서 극한의 개념과 유사하다. 극한에서는 값이 특정 값에 무한히 가까워지지만 절대로 그 값에 도달하지 않는 것처럼, 인간의 인식은 항상 실제 존재와의 차이를 줄여가지만 완전히 일치할 수는 없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더 정교한 체계를 발전시켜 나갈 수 밖에 없다. 어떤 완벽한 고정된 해답이 있는 것이 아니고, 답에 계속해서 근접해 나가는 '과정'에서 인간은 한 방향을 바라본다.
우리의 감각기관만으로 존재와 온전히 상호작용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가 세운 체계는 태생적으로 '네모'인 한계가 있다. 그렇지만 네모를 만들어 가는 것도 동그라미 안에 있다. 동그라미를 복제하고 있는 거다.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동그라미를 발견할 수 있다.
동그라미의 모순
그리고 자연 또한 모순을 갖고 있다. 인간의 한계때문에 모순으로 보이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모순을 계속해서 돌려막는 과정에서 변화가 생긴다. 그 변화의 에너지가 우리가 블록을 만드는 에너지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자연이 돌아가는 모순도 어떤 상위 차원의 모순이 에너지가 된 것은 아닐까 싶다. 알 수 없는 부분이다.
네모의 모순
이 네모가 점차적으로 쌓아가는 개념이면 좋겠지만 가끔은 잘못 쌓여올리진 블록을 해체하고 다시 연결해야 할 때가 있다. 우리가 공전, 자전하고 있는 지구에서 보면 하늘을 보면 태양이 도는 것처럼 보인다. 갈릴레이의 반대자들이 특별히 미친 게 아니라 진짜 눈으로 보면 그렇게 보인다. 당연히 두 눈으로 관측한 사실을 부정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알 수 있는 도구가 보급되지 못했다. 나중에야 지구가 도는 것으로 블록을 다시 조정할 수 있었다.
고전 역학도 마찬가지였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빛을 기준 단위로 한 것이다. 맥스웰 전자기파 방정식과 뉴턴역학이 안 맞는 부분을 해결하려다 보니 나왔다. 빛을 기준으로 기술하려니 공간과 시간 좌표가 이리저리 구부러졌다. 블록을 정교화하고 좀 더 진실에 가까워졌다. 지구가 태양을 돈다라는 것도 어떤 전체적인 메커니즘의 발견으로 인해 다른 높은 차원의 어떤 것으로 대체될 수도 있다.
또 다른 경우로는 애초에 블록이 동그라미가 아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도 있다. 수학에서도 기초부터 재검토하는 힐베르트 프로그램을 거쳤지만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로 인해 블록이 딱 맞지 않는 부분이 드러나 있다. 모든 체계는 몇 번 더 꼬여져 있는 모순을 발견하고 더 큰 포괄적인 메커니즘으로 대체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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