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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저 세팅 과하다 과해

Toolofv 2024. 12. 2.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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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 밥을 먹으러 가면 수저와 젓가락을 놓는 매너가 여러 가지다. 처음에 매너상 휴지를 깔던 것이 계속 돼서 지금은 전용 수저 받침대가 있는 식당도 있고, 접시가 나오기 전까지는 수저와 젓가락을 놓지 않는 방법도 생겼다. 예민하고 조금 유난떠는 사람은 그냥 테이블에 놓인 수저와 젓가락은 쓰지 않는다고 하고 다시 달라고 해서 수저 세팅을 해준 직장동료들을 무색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의 이런 테이블 매너(?)가 과연 발달한 과학에 근거한 합리적인 위생에 대한 태도일까? 여기에는 그냥 위생에 대한 관념만이 작동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예전 프랑스의 귀족 문화만 해도 신참으로 파리의 여러 가지 예절을 모르면 사교계에서 교양없는 사람이라고 소문이 나서 매장당했다. 오노레 드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1834)'에 나와 있다. 파리의 귀부인을 만나러 가야 한다면 그 집의 가족 문제, 대소사에 대해 꿰고 가야 한다. 혹시나 모를 얼굴 붉힐 만한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당시 프랑스 사교계에서도 소위 먹어주는 행동과 에티켓, 위생에 대한 관념들이 있었다.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보기에 왠지 프랑스 귀족 문화하면 뭔가 교양과 매너가 뛰어나고 다들 깔끔한 사교적인 말과 기분좋은 어울림과 와인 한 잔, 사치스러우면서도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떠올리고는 한다. 웃긴 것은 지금의 우리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은 면들이 있다는 거다. 
 
볼테르(1694~1778)의 나라라고도 불리는 곳에서 그의 애인이자 과학자인 샤틀레 부인(1706~1749)은 출산 중 감염으로 죽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명문 귀족이었고 그녀 역시 사교계에서 유명했을 것이다. 그런데 당시 유럽의 수술을 하면서 손을 씻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위생 관념의 부재로 그녀는 죽었다.
 
독일계 헝가리 의학자 제멜바이스(1818~1865)때에 와서야 지금은 너무나도 당연한 손씻기가 의사들에게 알려졌다. 당시 산모들은 의사의 손에 맡겨지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 했다고 한다. 제멜바이스의 손씻기에 대한 지금 봐서는 당연한 이야기가 당대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은 또 한 번의 충격이다. 그는 교수직도 잃고, 정신병원에서 간수에게 폭행당해 '세균감염(...)'으로 세상을 등졌다.
 
지금은 어떨까? 발달한 과학과 통계, 수치화, 현미경 등 도구의 발전으로 인해 예전에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위생에 관해서도 그렇다. 세균의 존재는 현미경의 개발을 통해 17세기에 알려졌고, 바이러스의 존재는 전자 현미경을 통해 20세기에야 볼 수 있었다. 장기간 쌓인 각종 통계와 데이터들은 나름대로 귀납적인 해석을 할 수 있게 해주었고, 여러 건강에 대한 상식들을 만들었다.
 
의사들은 그 것이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어떤 상한선은 있는지 등의 모형에 대해 말하지 않고, 일단 볼 수 있는 자료에 근거한 매뉴얼대로 술과 담배를 멀리 하라는 조언을 내린다. 과식도 하지 말고 뭣도 많이 먹으면 안 좋다고 한다. 나열식이다.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 다만 그대로 살면 사는 재미가 없어진다는 심각한 문제가 있지만. 술담배 안하고, 먹지 말라는 거 적당히 먹는게 당연히 건강에 좋자나?
 
하지만 노래에서 발성도 마찬가지지만 성대를 관찰한다고 목 안에 내시경을 꼽고 아무리 데이터를 뽑아내도 그런 나열식 수집으로는 발성을 얻을 수 없다는 거다. 한 차원 더 들어가 몸통의 작용에서부터 보아야 하고, 더더 들어가봐야 한다. 엔진놔두고 바퀴만 관찰하는 꼴이다. 2차원의 좌표를 3차원으로, 4차원으로 모형적으로 봐야 한다는 거다. 
 
사람의 몸에도 각종 세균과 바이러스들이 득시글거린다. 단순히 테이블이 지저분할 것 같아서 수저를 깨끗히 모셔서 두어야 한다는 생각은 매너도 아니고, 위생적이지도 않다. 오히려 식당에서 있을 만한 적정량(?)의 세균은 인체 면역력에 대한 메커니즘으로 보면 그 균형을 유지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혹시 이 것을 사람이 과연 먹을 수 있을까? 라고 고민한 것이 있다면 높은 확률로 누군가는 그 것을 먹어왔다. 또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본다면 어차피 깨지는 관념이기도 하다. 식당의 러쉬 타임에서 그들이 생각하는 멸균실 수준의 위생은 챙겨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조지 오웰의 '파리와 런던 거리의 성자들(1933)'이라는 책에서도 볼 수 있다. 여기에 나온 묘사는 좀 심하긴 하다. 애초에 식당에서 밥을 먹으려 한다면 감수해야 하는 거다. 수저통이랑 주방에 득시글한 세균과 바이러스는 당신을 노리고 있다.
 


 
 
진실로 보면 이 문제는 위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들도 다 알고 있다. 다만 현장에서 말할 수는 없는 것. 여기에는 권력에 대한 문제가 숨어 있다. 이거다. 밥 먹을 때 깔끔떨고 위생을 챙기는 것이 그냥 무던한 사람에 대해 주도권을 가져온다. 무엇을 못 먹는 사람과 먹을 수 있는 사람이 같이 식사를 한다면 그 메뉴를 고를 수 없는 거다. 그냥 이거다.
 
위의 프랑스 사교계의 교양, 매너도 마찬가지다. 진짜 귀족들이 비위가 다들 약하고, 위생적이면 샤틀레 부인은 왜 죽은 거고, 당시 유럽의 부인들은 왜 애를 낳다가 죽었다는 걸까? 프랑스는 화장실도 없고, 좀만 방심하면 똥통 뒤집어 쓰는 나라였다.
 
정리하면 우리는 무언가 볼 수 있는 도구들을 얻었고, 수치화할 수 있는 데이터도 생겼는데 그 것을 말할 수 있게 되었고, '수치'라는 권위를 이용해 그게 위생 관념이라는 말로 포장되었다는 거다. 거기에는 '이거 괜찮아' 보다는 '이거 불결한데?'의 방향 뿐이 없다.  이면에는 심심한 사람들의 권력 행동이 있는 것이다. 비단 수저 세팅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권력 행동이 나쁘다는 말도 아니다. 다만, 사소한 일에 열올리지 말고 진짜 권력 행동을 할 만한 거리를 찾아 보자는 거다. 멋있게 할 일도 많자나? 좀스럽게 가지 좀 말자. 숨막힌다.
 
 
 
 

<호빵맨의 세균맨 - 출처 : https://blog.naver.com/wang3850/2212429196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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