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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olofv 님의 블로그
수저 세팅 과하다 과해 본문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가면 수저와 젓가락을 놓는 매너가 여러 가지다. 처음엔 매너상 휴지를 깔던 것이 계속 되어 지금은 애초에 전용 수저 받침대가 있는 식당도 있고, 접시가 나오기 전까지는 수저와 젓가락을 놓지 않는 방법도 생겼다. 조금 유난떠는 사람은 그냥 테이블에 놓인 수저와 젓가락은 쓰지 않는다며 주는 마음을 교체하기도 한다. 수저 세팅을 해준 직장동료들을 무색하게 하는 것은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이.
한국의 이런 테이블 매너(?)가 과연 발달한 과학에 근거한 합리적인 위생에 대한 태도일까? 여기에는 그냥 위생에 대한 관념만이 작동하고 있는 것일까?
예전 프랑스 귀족 문화에서는 신참으로 사교계에 참여하면서 파리의 예절을 잘 모르면 교양없는 사람이라고 소문이 나 매장을 당했었다고 한다. 오노레 드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1834)'과 스탕달의 ‘적과흑(1830)’에 묘사되어 있다. 파리의 귀부인을 만나러 가야 한다면 그 집의 가족 문제, 대소사에 대해 꿰고 가야 하는 것 따위다. 혹시나 모를 얼굴 붉힐 만한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당시 프랑스 사교계에서도 소위 먹어주는 행동과 에티켓, 위생에 대한 관념들이 있었다.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보기에 왠지 프랑스 귀족 문화하면 뭔가 교양과 매너가 뛰어나고 다들 깔끔한 사교적인 말과 기분좋은 어울림과 와인 한 잔, 사치스러우면서도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떠올리곤 한다. 그런데 이러한 이미지를 떠나 지금 우리의 시선으로 보기에 그렇지 않은 면들이 있다는 거다.
볼테르(1694~1778)의 나라라고도 불리는 곳에서 그의 애인이자 과학자인 에밀리 뒤 샤틀레 부인(1706~1749)은 출산 중 감염으로 한창 나이에 죽을 수 밖에 없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왕과도 친분이 있는 명문 귀족이었고, 그녀 역시 사교계에서 유명했다. 당시 대다수의 가난한 농민들과 다르게 최상위 귀족으로 부족할 것 없는 환경이었음에도 수술을 하면서 손을 씻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위생 관념의 부재로 인해 그녀는 어이없게 죽어버렸다. 이외의 여성들이 어땠을지는 안 봐도 비디오다.
유럽에서 독일계 헝가리 의학자 제멜바이스(1818~1865)때에 와서야 지금은 너무나도 당연한 손씻기가 의사들에게 알려졌다. 당시 산모들은 의사의 손에 맡겨지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 했다고 한다. 제멜바이스의 손씻기에 대한, 지금은 당연한 이야기가 당대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은 또 한 번의 충격이다. 그는 교수직도 잃고, 정신병원에서 간수에게 폭행당해 '세균감염(...)'으로 세상을 등졌다. 당시 유럽은 사교계라는 이미지와 다르게 기본적인 위생관념도 없어 죽는 환자가 속출하는 무서운 곳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어떨까? 발달한 과학과 통계, 수치화, 현미경 등 도구의 발전으로 인해 예전에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세균의 존재는 현미경 개발을 통해 17세기에 알려졌다. 20세기에는 전자 현미경을 통해 바이러스를 볼 수 있었다. 이러한 도구의 발전과 더불어 의학의 발달은 적절한 위생 관념을 갖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장기간 쌓인 각종 통계와 데이터들은 나름대로 귀납적인 해석을 할 수 있게 해주었고, 여러 건강에 대한 상식들이 좀 더 정확해졌다.
그런데 의사들은 그 것이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어떤 상한선은 있는지 등의 모형에 대해 잘 말하지는 않는다. 일단 볼 수 있는 자료에 근거해 매뉴얼대로 술과 담배를 멀리 하라는 조언을 내린다. 과식도 하지 말고 뭣도 많이 먹으면 안 좋다고 한다. 몸에 안좋으면 다 하지 말라는 나열식이다.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 술, 담배를 안하고 먹지 말라는 거 적당히 먹는게 당연히 건강에 좋자나? 그런데 이러한 나열식의 접근이 전체 메커니즘을 보지 못하는 과도한 위생관념을 만들어내는 재료가 된다.
필자는 예전에 노래를 했기에 이에 빗대 말해본다. 한동안 발성을 배우는 데에 의학적 발성 교육이라 해서 나름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성대를 관찰한다고 목 안에 내시경을 꼽고 연습하는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아무리 데이터를 뽑아내도 발성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 드러났다. 같은 차원에 갇힌 나열식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한 차원 더 들어가 몸통의 작용에서부터 보아야 하고, 더더 들어가봐야 성대, 표정 등의 사용법을 알 수 있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나열식 접근은 엔진을 놔두고 바퀴만 관찰하는 꼴이다. 2차원의 좌표를 3차원, 4차원으로 모형적으로 봐야 한다. 부분적으로 떨어뜨려 보지말고, 통짜로 봐야 전모가 보인다.
사람의 몸에도 각종 세균과 바이러스들이 득시글거린다. 단순히 테이블이 지저분할 것 같아서 수저를 깨끗히 모셔서 두어야 한다는 생각은 조금 이상하다. 어차피 곳곳에 세균이 득시글하는 세상에 말이다. 오히려 식당에서 있을 만한 적정량(?)의 세균은 인체 면역력에 대한 메커니즘으로 보면 그 균형을 유지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장치다. 장시간의 멸균실 환경은 오히려 위험하다. 위생에 도움이 되는 나열보다는 환경과 인체의 상호작용의 모형이 있고, 이에 따른 합리적인 접근이 더 위생적이라고 본다. 애초에 식당에서 밥을 먹으려 한다면 상호작용을 감수해야 하는 거다. 수저통이랑 주방에 득시글한 세균과 바이러스는 위생을 챙기는 당신의 행동에 상관없이 어떤 경로로든 들어온다.
진실로 보면 이 문제는 위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들도 다 알고 있다. 다만 현장에서 말할 수는 없는 것. 여기에는 권력에 대한 문제가 숨어 있다. 이거다. 밥 먹을 때 깔끔떨고 위생을 챙기는 것이 그냥 무던한 사람에 대해 주도권을 가져온다. 무엇을 못 먹는 사람과 먹을 수 있는 사람이 같이 식사를 한다면 그 메뉴를 고를 수 없는 거다. 그냥 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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