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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압력이 등을 떠민다. 본문
사회의 압력, 등을 떠민다.
사회를 엮어주고 상호작용을 하게 압박하는 사회 압력이 있다.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면서 그게 잘하는 일이고 밥도 먹여주는 일이라면 더할 나위없겠으나, 실질적으로 그런 사람은 전체적으로 볼 때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럼에도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 수 있다면 그 것은 온전히 자신의 능력만을 토대로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미 주어진 것, 부모의 재산이든 아니면 다른 분야에서 벌어들인 돈이든 외부의 도움이 있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의 도움을 통해 돈에 관한 압박은 일정 부분 상쇄되며 그 기간동안 우리는 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하거나, 혹은 젊은 시절에만 할 수 있는 창의에 힘쓰거나 할 수 있다. 그러다 독립을 하면 여러가지 압박에 떠밀려 직장을 구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돈을 벌게 된다. 내 앞에 있는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자석같은 게 작동되어서 거기에 끌려서 앞으로 가는 게 아닌 무언가가 등을 떠밀어서(?) 앞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냉장고를 열면 찬 공기가 나와서 피부에 닿는다. 그러나 그 말은 틀린 말이다. 공기 분자의 운동에너지가 온도를 결정한다. 냉장고 바깥의 따뜻한 공기는 냉장고 안의 차가운 공기보다 상대적으로 분자의 운동이 활발한 상태이며 그 바깥의 운동이 활발한 공기의 분자가 냉장고 안의 정적인 공기를 밀어낸다는 게 좀 더 정확한 말이다. 뜨거운 공기가 차가운 공기를 밀어내서 그 차가운 공기가 우리의 피부에 닿는다.
출근길 지하철을 예로 들 수 있다. 출근길 바삐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의 행렬이 있다. 상대적으로 천천히 움직이는 여유있는 사람들이 그 행렬에 밀려 바깥쪽에 위치하게 되는 것이 그렇다.
사회에도 그러한 압력이 존재한다. 사실 우리가 하고 싶어서 한다.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 한다. 이런 말은 거짓일 때가 많다. 그냥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려다 보니, 여러가지 사회적 관계 등을 고려해 하는 말인 것. 사실은 절대적인 어떤 압력에 등을 떠밀려 결정했을 가능성이 높다. 취직, 결혼, 출산, 소비 등도 그렇다. 실질적으로 그 것을 안 했을 경우의 압박이 존재하고 압박에 밀려 의사결정하였다. 실질적인 내 선택권은 그 중 어떤 것이냐다.
사회가 우리의 등을 떠미는 것이 있다. 꼭 돈에 관한 것에 한정되지 않는다. 흥행중인 영화를 보아도 정말 내가 보고 싶어 선택한 것도 있지만, 모두가 보았다는 트렌드의 압박이 있다. 옷도 그냥 입을 수도 있는데 스타일을 신경쓴다. 그런 게 다 사회의 압박인 거다.
사회압의 감소와 반작용
사회압이 감소하면 어떻게 될까? 너무 극심한 밥먹고 살기에 대한 압력이나 어떤 불합리한 사회 관행에 대한 압박은 감소되는 것이 맞다. 과도한 부분은 조절해야 한다. 그러나 형식없는 자유는 형식안의 자유보다 쉽지 않다. 사회압이 감소되면 우리를 엮어주는 관계의 긴밀함도 슬슬 풀릴 것이고, 우리가 갖고 있는 오답들의 보정이 제거되어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정적으로 변한 만큼 스트레스를 받는다. 인간은 가만히 있는 동물이 아니다.
전체적인 사회의 압력이 감소되면 그 감소한 압력만큼 반작용하고 있는 힘이 평형을 회복하며 그 것은 반사회적인 고인물로도 등장한다. 여러가지 사이비나 조폭, 반사회세력 등의 발호도 그렇다. 그들도 사회압, 문명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일부 반면교사의 역할을 하는 데에 필요성이 있지만 그 반작용힘을 사회의 압력이 이긴다는 전제 하에 의미가 있다. 그들의 발호는 사회가 부재한다는 반증이다.
결국 아닌 것들은 '넌 여기까지다!'하고 막아서는 팽팽한 압력이 작용해서 이기는 평형을 가져가야 하는데 그 동력이 약해지면 자연스럽게 더욱 발호하게 되는 거다. 압력이 부재하는 공간만큼 반대로 채워져서 총량이 같다. 범죄나 각종 사이비에 대응하는 공권력도 중요하지만 애초에 사회의 압력을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의 압력은 조절할 수 있다. 사회압의 동력은 물리적 도구든 구조, 편제, 제도의 도구든 간에 새로운 도구다. 그에 따른 생산력의 증대가 사회의 변화를 가져오고 그 변화 과정에서 압력이 공급된다.
역사에 피로 써온 '민주', '자유', '인권' 이라는 좋은 말도 그 압력이 유지될 때 의미를 찾는다. 전문 지식도 사회를 괴롭히는 데에도 쓰일 수 있는 도구에 불과하다. 그 도구도 사회의 압력이 유지될 때 제 기능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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