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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olofv 님의 블로그
더 글로리와 사적 제재, 이미 한 시행착오다. 본문
넷플릭스 드라마 "더글로리"의 흥행
벌써 시간이 꽤 흘렀는데, '더 글로리'란 드라마가 넷플릭스에서 2022년부터 2023년까지 파트1, 파트2로 나뉘어 공개되었고, 흥행을 일으키며 화제가 되었다.
작가를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고, 옳고 그름을 떠나 작가는 어찌되었든 현재의 대다수의 한국인들이 공유하고 있는 어떤 감정의 뭉치, 그 흐름을 표현한거라 생각한다.
“어서 와, 나의 지옥에 온 걸 환영해”
학교폭력부터 온갖 강자의 횡포, 부조리가 사회에 판치는 듯 보인다. 실제로도 맞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 조금 더 자신을 강한 사람이라 생각하고, 용기를 낼 필요가 있다. 그냥 한 사람의 복수만으로 그쳐서는 안되는 문제이고, 조금 더 면밀하게 현상을 짚어봐야 한다.
고려 경종 때의 복수법
고려 경종(재위 975~981)은 20살에 즉위하여 26살에 요절한 비운의 군주였다. 아버지 광종은 태조 왕건 사후 형제인 혜종과 정종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광종은 귀족의 힘이 강했던 고려에서 노비안검법, 과거제도 실시 등으로 왕권 강화를 다졌던 인물이다. 재위기 후반 끝모를 숙청과 공포정치 속에서 경종은 어린 시절 성장하게 된다. 경종에 대한 평가는 그렇게 나쁘지 않으나, 한가지 후대에 길이(?) 남을 실수를 남기고 말았는데, 그 것은 바로 '복수법'의 시행(975)이다.
복수법이란 조금 과장해서 누군가를 갑자기 살해하여도 '복수였다!' 라고만 선언하면 모든 게 용서되는 제도였으며, 이로 인해 고려는 사소한 이유로도 사람을 살해하거나, 모함하여 살해한 후 복수법을 악용하는 대혼돈이 연출되었다고 한다.
급기야 976년에 재상이었던 왕선이 태조의 아들이자 경종의 삼촌들인 천안부원낭군(효성태자)과 진주낭군(원녕태자)을 살해하고 복수였다라고 하는 사건이 발생하였으며, 경종은 서둘러 이 법을 폐지하게 된다.
사적제재의 공기
2024년인 현재에도 사적제재 유튜브에 대한 이슈들이 있었다. 현대사회의 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여론이 있다. 정말 그런 면도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사적제재는 과연 옳은 것일까? 우리 이분법의 프레임을 탈피하여 현상을 제대로 봐보자.
더글로리 드라마의 내용은 학폭을 당한 문동은이 가해자 박연진에게 복수를 하는 내용이다. 물론 복수가 통쾌하기도 하고, 사회 어른들의 부조리가 학교까지 번져, 피해자가 생겨도 아무 도움을 받을 수 없는 현실에 대한 표현은 우리네가 피부로 느끼는 익숙한 공기였다.
개인의 복수?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킬빌"이나 뭐 여러가지 복수 영화들 많자나. 복수하는 영화도 나름의 흥행 공식을 갖춘 패턴이다. 사회의 법체계를 떠나서 어떤 범상치 않은 사건에 휘말린 한 개인으로 복수를 할 수도 있다고 본다. 현실에서는 법에 의한 제재는 받겠지만.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 아쉬웠던 것은 복수를 하는 것에 있어, 자신의 힘 혹은 더 나은 집단(공론화)의 힘을 이용하지 않고, 기존의 닫힌 사회 시스템 속에서 복수를 실행하며 공공의 자원을 소모하며, 그 신뢰를 쏙 빼먹었다는 거다. 단지 자기 자신에게만 천착하여 사회를 해치고 다른 피해자를 양산하는 것을 보지 못한다. 복수도 좀 우아하게 해야 하지 않나 싶은 거다. 기왕 할거면 학폭의 생산지를 폭파시켰어야지. 복수에 대한 당위는 설득이 되는데, 주인공들이 어리광만 부리고 있다. 인터넷에 검색하면 무수히 나오는 진상이나 범죄자들처럼 온통 남탓이다.
"왜 맞을 짓을 하냐?", "욕먹을 짓을 하니까 욕을 먹지." "밤거리에 쏘다니니까 너가 나를 이렇게 만든거다."
마지막에 복수를 도와준다면서 의사가 의사 가운을 이용하고,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것을 문동은이 전파(?)하는 장면은 좀 무서웠다. 아니, 여기에 열광하는 분위기가 더 무서웠다고 하는 게 맞는 말일 수도 있겠다. 그 결과? 보시듯 사적제재에 의한 직,간접 피해자 양산이다. 문동은이 다른 폭력의 생산지가 되었다. 사적제재 유튜브에 대한 직접 피해도 피핸데, 금쪽이부터 요새 방영하는 이혼숙려캠프인가? 까지 온통 사람들이 눈에 핏발이 서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불행경쟁을 하면서 빌미만 잡고자 하고 있다. 타인의 맞을 짓, 욕먹을 짓을 찾아나서고 있다. 그 짓을 한 사람에게 도덕적 당위를 갖고서 폭력을 저질르고야 말겠다는 듯이.
이미 시행착오를 겪었다.
분명히 말한다. 고려 경종때의 복수법을 보듯이, 우리는 이 사회에 살기로 하면서 사적제재를 하지 않기로 약속한 것이다. 언제부터? 사회의 각종 인프라,혜택을 누리면서부터. 이미 시행착오를 무수하게 역사안에서 겪은 사항인 것이다. 물론 뭐 일정 정도의 비판이나, 범죄가 되지 않는 선에서 조절되면서 평형을 찾아가는 정도의 문제는 굳이 말할 것은 아니다. 그런데 지금은 선을 넘었다는 것이다.
어떤 누군가가 빌미를 주었다고 해서 당신이 직접 그 사람에게 폭력을 가할 권리는 주어지지 않는다. 법 체계가 문제가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 법 체계마저도 없었다면 사회는 붕괴되고, 약육강식과 약탈의 대혼돈이 온다. 검찰이나 법원의 문제는 문제대로 해결해가야 하지만, 그렇다고 사적제재를 합리화하면서 눈에 핏발을 세운채, 빌미를 주는 희생양을 찾고 사냥하는 것은 또 다른 하나의 폭력이다.
우리는 좀 더 강한 사람이 되어서 이분법을 극복하고, 현실에 긴밀하게 대응해야 한다. 1인칭 시점을 벗어나 사회 전체의 대표자로 보는 시점이 필요하다. 어리광을 벗어나, 사회가 복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복수는 사회의 대표자로서 해야한다. 폭력의 생산지를 폭파해야한다. 우리가 뭉치면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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