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투 포인터
- Prim
- 유니온 파인드
- 오블완
- DP
- union find
- 내란수괴
- 다익스트라
- 6. 25. 전쟁
- BFS
- 구조론
- 분할정복
- 재귀함수
- 내란죄
- 윤석열
- 백준
- 프림
- Python
- 내란수괴 윤석열
- dfs 백트래킹
- ccw
- 하버-보슈법
- 이분 탐색
- 국민의 힘 뿌리
- 왈왈왈
- 티스토리챌린지
- LCA
- 알고리즘
- dfs
- 비상계엄
- Today
- Total
Toolofv 님의 블로그
신은 있다. 진화론과 창조론 본문
사람은 누구나 약하다. 혼자서 개인으로 감당하기 힘든 시련들이 살다보면 주어지기도 한다. 출구없어보이는 그 교착을 타개하는 데에는 제 3의 무언가를 변수로 추가하여 의존하게 된다. 인류에게 그게 '신'이었다.
사람이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것은 종교의 등장과 관련이 깊다. 종교는 사람의 본성 중 일부인 것이다. 그 종교가 무슨 종교이든지 이 '종교'가 인간이 살아가는 데에 그래도 하루를 살 수 있는 힘을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진실인지 알 수는 없지만, 아니 진실은 분명히 아니지만 종교는 그래도 에너지를 주고 있다. 사람을 묶어주고 있다.
갈릴레이와 뉴턴의 등장으로 인해 서구의 과학혁명시대를 거치며, 점성술은 삿된 것이 추려지고 천문학으로 남았고 연금술도 삿된 것이 추려져서 화학으로 남았다. 사람들에게 합리적인 인과 관계에 따라 사물을 보는 세계관이 보급되었고, 그 과정에서 삿된 것들은 탈곡기에서 걸러진 것이다. 현재도 진행중이며, 없어진 학문들이 꽤 많다.
합리주의적 세계관에서 도구의 발전이 이뤄지고, 도구를 손에 쥔 각 참가자들의 구도는 새롭게 재편되었으며, 근현대를 열어젖히기도 했으나 인간은 결국 새로운 상황의 불확실함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2차례의 세계대전등으로 서열을 확인하자고 달려들고 말았다.
현재 주요 종교들은 과학혁명을 거치기 이전의 만들어진 종교다. 아무래도, 원리주의 해석을 고집한다면 현대의 합리적 세계관과 충돌할 수 밖에 없다. 그나마 여러 역사적 사건들을 거치며 종교 또한 현대와 타협, 또는 일시적으로 덮는 데(?)에 유연한 교리와 체제만이 살아남았다고도 볼 수 있다. 뉴스에서 보는 반지성 종교들이 그나마 추려진 결과(ㄷㄷ..)일 수도 있다. 그리고 긴 시간에 걸쳐 추려지고 있는 국면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현대의 대표 종교들은 과학이 해주지 못하는 빈 자리를 채우고 사람들을 묶어주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보듬어주는 사회적 요람의 역할을 하고 있는 점도 분명 있다고 본다. 현재 살아남은 종교들은 구시대의 산물이지만, 분명히 현실적 필요에 의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본다면 과학과 종교의 이분법 대립이 아닌 현대에 맞는 새로운 종교 또한 존재할 수도 있을 것인데, 두각을 드러낸 신상품은 아직까지는 없었다.)
현대의 과학은 다른 학문들과 연결되어 있으며, 또 현재 과학이 풀어낸 정답은 인류가 존재를 알아가는 여정의 한 장면이라는 것, 과학은 '진리'의 잠정적인 정거장이고, 이 것을 인정하고 얼마든지 새로 반영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는 점이 각별하다. 합리적인 체계를 가진 것이다.
다만 그 체계를 존중하기로 합의한 사회에서 과학이 '현재' 해석한 정답에 순응하면서 생기는 말하지 못하는 피해 또한 있다고 본다. 이에 대해 말하면 비합리적인 사람이 되버리는, 그렇지만 현실에는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모순의 지점이 있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아직은 기술적 한계때문에 보지 못하는 영역일 수도 있고, 전체 메커니즘과 맞지 않는 잠정적인 부분의 해답을 진리로 오해한 오류일 수도 있고, 과학의 영역이 아닌 인간의 존엄과 의사결정의 영역을 과학적 합리성을 곡해하여 접근하는 오류일 수도 있다.
이러한 불판위에서 진화론과 창조론의 논쟁이 뜨겁게 구워진 거다. 미국에서는 원숭이 재판이라고 불리는 미국의 테네시주 데이턴 마을에서의 재판(1925)부터 도버 재판이라 불리는 미 연방법원 재판(2005)까지 몇차례 세기의 재판(?)이라고 불릴 수도 있는 사건들이 있었다.
진화론은 찰스 다윈의 과학 이론(1859)이다. 그런데 창조론은 사실 이론이랄 게 없다. 이론을 들고와야 연구가 가능하고 그 과정에서 정답을 찾아갈텐데, 이론이 없다. 창조론은 없으니, 그렇다면 진화론 승! 이렇게 봐서 진화론이 무조건 정답일까? 진화론 안에도 수정이 되었고, 앞으로도 수정해야할 것이 있을 것이고, 혹은 진화론의 어떤 아이디어만이 유효해서 통째를 들어내야만 하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있을 지도 모른다. 진화론은 그래도 이론이라 수정이 가능하고, 창조론은 이론이 없어서 할 말이 없긴 하다. 그 차이다.
그런데 진화론과 창조론의 대립은 사실 창조론자들의 게으름이나 고집때문이지, 잘 생각해보면 대립되는 개념은 아닌 듯 하다. 창조론은 이론만 있다면 언제든지 최신 과학을 창조론으로 얽어맬 수 있으며, 또 과학이 낱낱이 밝힐 수 없는 진실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관측 방법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진화론과 창조론의 대립은 이론의 대립이 아니고, 단지 창조과학이니 지적설계니 삿된 것이 탈곡기에 털린 것일 뿐이다. 또 창조론이 없는 이유는 그들만의 당위성을 고집하고 반영하려하기 때문이다. 창조론은 교회만 갖다 쓸 수 있는 단어는 아니다.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결국 우주도 그냥 존재한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 누군가가 입력을 넣어야 출력이 되고, 계통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탄소, 산소부터 심지어 중금속처럼 무거운 원소들이 수소,헬륨만 있던 원시우주에서 몇 번인지도 모를 초신성폭발로 인해 생겨 지구에도 존재하듯이, 또 그러한 환경의 행성에 여러 조건과 맞물려 생명이 등장했듯, 사건은 계통과 부모가 있다. 원인이 있다. 그리고 에너지는 보존된다. 최초의 에너지를 투입한 것은 누구인가? 우리는 앞으로도 알 수 없을 가능성이 높지만, 그 최초의 입력이 있었음은 의심할 수 없다.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덮어놓은, 더 깊은 부분의 이야기 (3) | 2024.10.11 |
---|---|
시험에 대한 단상 (2) | 2024.10.07 |
더 글로리와 사적 제재, 이미 한 시행착오다. (8) | 2024.09.25 |
각각의 합리성 총합은 합리적이지 않다. (1) | 2024.09.24 |
구조론의 글쓰기 방법 분석 (0) | 2024.09.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