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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시험에 대한 단상

Toolofv 2024. 10. 7. 13:03

어렸을 적, 6개월 수능 공부하고 운좋게도 공부한 대로만 족족 시험문제가 나와 꽤 잘 봤다. 그때까지 본 모의고사보다도 더 잘봤으니, 운이 정말 좋았다. 일단 수학은 포기였지만.. 수학은 지금와서는 재미있지만, 그때는 예를 들면 삼각함수에서 파생되는 공식들을 그냥 외우라는 식어어서, 흥미가 없어지고 안하다보니, 밀린 게 너무 많았다. 수학문제는 너무 어려워졌고, 가르치는 방식 자체가 너무 재미가 없었다.
 
얼마전, 푸리에 해석에 대한 수학을 유튜브로 봤는데 강의식으로 되어있는 영상들은 역시 그렇더라. 수학 논리의 정밀함에 누구라도 납득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라, 그냥 받아들여라. 이해를 강요하는 방식같은... 물론 잘 만들어진 영상도 찾고, 인터넷에 잘 나와있는 자료가 있어 어느정도 궁금증을 해소했다.
 
그 당시 본 수능 점수는 기억나지 않는데, 언어영역과 외국어영역을 잘 봤다. 뭐 내 나름대로는 잘 본 시험이었다. 역사야 워낙 재미있어 했던 과목이라 당근 1등급이고. 쨌든 운이 좋게 공부한 것만 족족 나와 잘 보았고, 학교도 장학금을 받고서 들어가게 되었는데... 역사학과를 갔다가 한문을 외워야 한다는 것에 버티지 못하고, 군대 제대와 동시에 고등학교 시절 정말 하고 싶었던 음악을 했다. 
 
지금 와서 수능 문제보니까, 이거 시간내에 풀 수조차 있는 건지 싶다. 요즘 학생들이 대단하긴 하네. 이런 걸 어떻게 풀어?사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시험 공부와는 맞지 않음을 발견했었는데, 요즘 수능이나 문제들을 보니, 예전보다도 더 뭔가 핵심에서 벗어난 시험을 위한 시험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어진 조건에서 수렴해서 딱 한 길로만 개연성있게 맞아떨어지는 문제가 좋은 문제일텐데, 길을 하나 잘못 들면 처음부터 다시 길을 가야하는 문제들이 있다. 주어진 시간까지 고려하면 풀이경로찍기와 다를바가 없는 듯.

특히나,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누구나 장비하고 있고, 또 인공지능도 나오는 때에 모든 회선을 끊고, 단지 뇌속에 있는 지식과 문제풀이 방법으로만 평가를 한다는 것은 시대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삼각함수 공식들을 한 번 훑고, 필요할 때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적용하면 되는 거지, 머리 속에 꾸역꾸역 집어넣을 필요가 있나? 어차피 안쓰면 까먹자나.
 
인간은 책, 도서관, 컴퓨터, 인터넷, 인공지능까지 뇌 속에 집어넣어야 했던 것을 분산 저장해서 뇌 바깥에 뇌를 만드는 방법으로 지식생산의 효율을 늘려왔는데, 왜 도대체 내 머리속에 있는 잡지식을 물어보는 거야? 언제든 꺼내쓸 수 있는 핵심만 거머쥐면 됐지, 사상사라면 아리스토텔레스의 핵심사상이 아닌 잡일같은 것을 왜 문제 보기에 집어넣는 거지? 핵심은 공부했으니 다음으로 넘어가거나, 더 깊이있게 알고 싶은 것을 파고들거나 해야 하는데, 문제를 풀기 위해 말단적인 것들도 외우려고 피똥싸고 있는 게 진정 공부인가? 오히려 큰 틀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이 인류에 발전시켜온 사상에 있어 어느 위치를 점하고 있고, 사람들의 생각이 그로 인해 어떻게 확장되었는지는 가르쳐주지 않고 말야. 관심가는 것은 따로 더 파고들텐데. 이런 의문들이 아직도 있다. 회사면접을 본다면, 면접관 질문에 대한 정답은 '그 것은 인터넷에 검색하면 10초면 나옵니다.' 라고 아직도 생각하고 있다.
 
시험점수가 잘 나오는 게 꼭 공부는 아니다. 얼마전, 카페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을 보았는데 어찌됐던, 근대 사회의 이론적인 부분을 제공한 홉스 리바이어던, 존 로크 통치론이나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보고 왜 이런 것을 만들어가지고... 하며 불평하고 있더라 ㅎㅎ... 그 학생들을 비판하는 건 아니다. 또 예전 이론이란 게 뭐 기록의 의미나 그 당시에서 새로운 지평을 연 것을 참고하고자 하는 거지 지금와서 쓰여진 그대로 익힌다는 게 뭔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고.
 
시험문제 푸는 것에만 전문가가 되려고 하면 세상일이 당연히 채점자가 존재하고, 주어진 문항에 답이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뭔가 만드는 사람은 시험범위를 늘린다고 생각하게 된다. 현실과 공부를 분리하게 된다. 누군가 물어보면 공부한대로 답을 말하지만, 현실에서는 수긍하지 못한다. 구조가 이러면 주형틀에 구워져 나오는 주물처럼 누구나 이러한 생각을 갖게 된다.
 
과연 현실에 많은 문제에 채점자는 존재하는가? 
 
시험문제가 아닌 현실의 문제는 채점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어찌 되었든, 자신이 혹은 팀이 여러 도구를 갖고서 해보지만, 필연적으로 시행착오를 겪는 것이다. 인간의 지식, 많은 부분이 닫힌 계를 가정하고 몇개의 인자만을 적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그런데 현실은 복잡계인 것이다. 더 큰 차원으로 보면 또 닫힌 계라고 볼 수 있는데, 이 관점을 알려면 여러 분야의 지식들을 종합적으로 보고 패턴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도서관을 전부 훑어봐야 한다. 니분야 내분야가리지 말고, 전부 훑어봐야 한다. 그리고 그 연결공식, 분류공식을 알아야 한다. 내가 도서관을 전부 훑어봤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태도를 가지면 일단 틀려도 되는 시험문제는 제끼게 된다. 이거 맞춰서 뭘 더 깨달을 수 있는데?
 
시험 인플레로 사람을 조지지 말고, 누구나 쉽게 꺼내 쓸 수 있도록 블럭을 정교하고 알기 쉽게 만들어야 한다. 지식인 뿐아니라, 각 분야에 관심있는 모든 사람들을 최대로 동원할 수 있도록 알기 쉽게 누구나 찾아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시험은 그냥 공부한 것에 대한 어쩔 수 없는 기술적, 행정적 한계로 인한 확인 방법일 뿐이지, 절대적인 척도가 아니다. 또 그걸로 사람을 줄세우는 시도는 봉건시대 계급대로 담장을 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지금은 뭐 아파트에도 별 필요없는 담장들이 많이 세워지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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