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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olofv 님의 블로그
각각의 합리성 총합은 합리적이지 않다. 본문
지식 체계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수학, 과학, 인문학 등 여러 갈래의 학문들이 있지만, 사실 학문은 하나다. 나무는 하나다.그런데 너무 방대해진 모양인지 사람들은 현재 이 학문 전체의 연결을 끊고서 부분적인 전문성만을 갖추려 한다.
글자가 전부 연결되어 있음을 안다면, 자신의 전공을 벗어나 전체의 시야를 갖게 된다. '전문성'이라는 역설적인 한계에 갇혀서 집단이기주의를 쏟아내는 일은 없게 된다. 그런데 사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가 현재 누구도 승복하지 않는, 해결되지 않는 매우 논리적인 사람들의 합리적인(?) 갈등을 겪고 있다.
검사는 검사대로, 의사는 의사대로, 경제부처는 경제부처대로, 누구는 누구대로 등등등... 어떤 분야든 자신만의 매뉴얼의 정답을 찾아간다. 자신의 매뉴얼의 정답을 찾아가는데 왜 세상은 이 모양일까?
경제부처라면 건전재정을 외친다. 자기들 내부에서는 그게 정답이라는 거 이해가 된다. 그런데 코로나19 같은 위기 상황이라면 무조건적인 건전재정이 맞는지는 조금 다른 이야기가 된다. 재난상황에 경제부처의 아주 안전하고, 합리적인 대응은 과연 정답일까? 더 넓게 봐서 각 부처들이 모두 각자의 정답을 찾아가는 게 과연 정답인걸까?
전쟁의 위기에 군인과 외교관의 정답은 상충될 수 있다. 각 분야의 전문가가 의견을 내놓을 수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조망해서 판단하는 주체가 있어야 하고, 상황에 따라 뒤집을 수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 국가라면 국민이다. 국민이 정치에 위임해 관리감독한다. 그게 어찌되었건 현재의 수준에서 합의한 최대 동원을 할 수 있는 의사결정시스템이다.
사람은 누구나 이분법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현실의 정답은 그 둘 사이 어딘가에 있는 경우가 많다. 정중앙에 있지도 않다. 둘 사이라도 그 비율은 그냥 숫자를 세는 것만큼이나 무한할 수 있다. 개인으로 해결되는 일은 이분법에서 벗어날 수도 있지만, 집단의 문제인 경우에 적절한 정답에 근사하는 것이 쉽지 않다. 한 번 작동을 시작하면 누구도 멈출 수 없는 극단이 된다. 인류 역사동안 그 걸 통제한 방법은 한 극단의 끝에서 주사를 맞고서야 다른 극단으로 방향을 옮겨가는 것이었다. 다른 극단에서 또 주사를 맞고... 반복... 반복 중에 겨우 조금 더 적절한 위치를 찾아간거다. 물론 그 와중에 누군가는 '피'를 흘린다. 결국 집단의 의사결정에 피가 연료가 되었다. 피를 보고서야 의사결정이 된다.
개인의 이분법 논리는 집단에서 꺾이고, 집단의 이분법 논리는 더 큰 집단이 호출될 때 꺾인다. 알고 보니, 입체적으로 조망해야하는 문제라는 것이 드러난다. 그 과정에 피가 비용으로 지불되었다.
합리적이라는 게 뭘까? 몸 전체의 밸런스를 잊은 채, 오른손이 오른손만의 합리적 정답을 찾겠다고 나서는 것은 과연 의미가 있을까? 만약에 오른손이 손격(?)이란 게 있어서 왼손과의 공정성을 요구한다면 이 한 몸의 관리자인 나는 그걸 들어주어야만 할까?
합리성이란 전체의 밸런스부터 부분까지, 중요한 것부터 말단까지 한 줄에 꿰는 개념이어야 한다. 물론 손이 독립을 요구하는 일은 없다. 몸은 통째로 몸이니까. 나는 하나의 단위로 움직인다. 손이 한 일은 내가 한 일이다.
사회로 보면 지금은 마치 '기득권 전문가들이 각자의 합리성으로 무장한 난'을 보는 것 같다. 몸의 각 부위가 따로 놀며, 서로의 정답만을 말하고 있다.
'전문성'이라는 합리적인(?) 도구를 갖고 민주주의를, 집단을 유린하고 있다. 전체 의사결정시스템을 망가뜨리고 있다. '사짜'에 기대서 잘 본 시험성적만으로 사람을 가르고, 줄세우고 도처에 하극상을 벌이고 있다. 도대체 '진리'가 말하는 사람의 직업이나 평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인가?
한계가 있는 제도를 어쩔 수 없이 더 나은 방법이 안보여 굴리고 있다는 생각과 지금의 모든 시스템이 정답이라는 생각은 아주 큰 차이가 있다. 전자는 과정에서 당연히 생기는 모순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여 해결하려고 한다. 어차피 들 비용이었던 거다. 후자는 시험보듯이 정답이라는 게 이미 시스템에 만들어져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이 비용을 인정할 수가 없다. 손해를 보았다고 여긴다.
지금은 합리성이라고 써져있는 무기를 들고 도처에 전투가 벌어져 있다. 모두가 합리성을 외치는데, 아무도 승복하지 않고, 피가 낭자하다. 광장을 둘러보면 도처에 피흘리는 사람들이다. 각자의 합리성이 모여 비합리성을 구성하는데도 각자만의 합리성만을 외친다. 그 바깥은 보지 않는다. 모두 연결되어 통짜로 하나라는 시선이 없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그들이 어쨌든간에 광장은 피를 먹고 자란다. 입체적으로 조망해야 하는 문제임이 드러난다. 더 큰 집단인 국민이 교통정리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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