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olofv 님의 블로그

징기스칸, 몽골이라는 척박한 공간에서 세계를 정복하다. 본문

역사

징기스칸, 몽골이라는 척박한 공간에서 세계를 정복하다.

Toolofv 2024. 9. 6. 11:28
형사취수제? 이 바닥에서는 사회보장제도다.

 
옛날 유목민의 사회에는 형사취수제란 관습이 있었다.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취한다(?)는 풍습인데, 그래도 잘먹고사는 현대의 우리가 보기에는 여성의 인권을 무시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야만한 관습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건 현대의 기준이고, 당시 몽골이라는 지역, 그 바닥에서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다.
몽골의 척박한 환경에서 남편을 잃은 여성은 특별한 세력이 있지 않은 이상,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여성의 입장에서도 부족을 벗어나서 살수는 없으며, 부족의 입장에서도 팀원이 없어지면 그만큼 피해가 된다. 형사취수제는 야만적인 관습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사회보장제도였다. 수계혼이라고도 하는데, 흉노의 노상선우(묵돌선우 아들)때 한문제의 환관이었다 귀순한 중항열과 한나라 사신과의 대화가 유명하다.
 
몽골의 유목민들은 팀단위로 움직이며, 게르(천막)에서 생활을 하고, 사냥,목축 및 약탈로 먹거리를 조달한다. 다른 팀과 연대하기도 하며, 적팀에게 자다가 습격을 받아 약탈을 당하기도 한다. 우리네가 생각하는 정주형 농경 사회와는 많은 부분이 다르다. 자기 몸, 재산은 스스로 지켜야 하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팀단위 생활이 구성된 것이다. 몽골의 남자는 아주 어릴 적부터 말과 친해지며, 자연스럽게 활을 다루게 된다. 또 유목민은 프로젝트가 구성되고, 리더가 정해지면 급속히 뭉치는 특징이 있다.
 

몽골의 척박한 환경, 그에 따른 유목민의 생활 양식안에서 세계사는 일대 변혁을 겪게 된다.

 


테무진은 사실 몽골에서는 나름대로 좋은 집안출신이었던 것은 맞다. 아버지 예수게이는 보르지긴 오복 키야트 씨족장의 아들이었으며, 몽골 시조의 직계손이라고 한다. 나중 테무진의 아내 부르테가 메르키트 족에게 납치되었을 때, 케레이트 부족의 옹 칸의 힘을 빌리는 데도 테무진의 출신이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테무진은 보잘 것 없는 게르에 소속된 어린아이였고, 이복형 벡테르와 어머니 후엘룬이 결혼(형사취수제)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벡테르를 죽이고, 가장의 자리에 올랐다. 나중에 이게 문제가 되어 금나라에서 노예 생활을 하기도 하며, 그야말로 갖은 개고생을 했다. 이후 9살에 만났던 부르테를 다시 만나 부족을 꾸렸던 것 같고, 케레이트의 옹 칸과 자다란 씨족의 자무카와 연대를 맺는 외교를 하며 안전을 보장받는다. 당시에는 세력이랄 것이 없던 상황이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아내 부르테가 메르키트족에게 납치를 당하고, 케레이트족과 함께 아내를 구하는 과정에서 변화가 시작되었던 것 같다.(이 때, 부르테는 임신중이었는데 여기서 태어나는 아들이 킵차크 칸국의 주치이다. 출신 문제로 몽골 형제분쟁의 원인이 된다.) 이후 테무진은 자무카와 생활하며 일정정도의 세력을 형성하게 된다. 기존의 부족간 이합집산에 염증을 느꼈거나, 혹은 더 효율적인 조직구조를 깨달았는지 세력이 점차 불어났으며, 신분에 얽매이지 않은 인사와 불평 및 나중에 문제가 될 소지를 원천 제거하는 물자 분배, 조직구조를 만들어 적마저 통합하면서 커나갔다. 주르킨, 타이치우드 부족, 타타르, 옹 칸, 자무카, 나이만 부족을 제압하고 몽골을 통합한다. 
 
 
징기스칸은 호전적인 스타일로 몽골을 정복한 게 아니라, 조직의 장으로서 내부에 생길 수 있는 문제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지지 않으려는 과정에서 살아남게 되고, 상대편마저도 취직(?)하고 싶게 만들어 결국 세력이 커지고 통합을 이룬 것으로 보인다. 이후 호라즘 왕국, 서하(탕구트), 금나라(여진) 정복에서 다른 문명권의 좋은 것이 있으면 받아들이는 데에 주저하지 앉았으며(예컨대 중국의 화약, 나침반, 종이 등), 고립화되어있던 세계에서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연결하며 최강이 되었다.
 

조직과 구조의 천재, 징기스칸

 


될대로 되라! 자연의 보이지 않는 손에 맡겨두었던 혼란의 몽골에서 나름대로 규율을 만들어 일정시기에는 사냥을 금하고, 겨울에 식량이 부족해지는 경우를 없앴다. 여자 납치, 납득할 수 없던 물자분배, 신분차별 등을 없애 부족간 분쟁과 전쟁의 소지를 사전에 차단했다. 문제가 있으면 어떻게든 해결하였으며, 기존의 방법에 얽매이지 않고, 창의적인 해결을 하였다.  
 
몽골의 징기스칸은 조직과 정치, 군사의 천재였으며, 당시 몽골기병은 세계를 먹을 만큼 강했던 타이밍이었기도 하지만 그 조직체계와 효율적인 통신, 그 이전의 신뢰 영역을 해결한 유일한 리더였던 것이다.

 

역사의 무수한 사례에 있는 것처럼 카이사르같이 내부에서 암살을 당하거나, 배신을 당하는 경우가 신기할만큼 없었다. 징기스칸의 팀은 능력도 뛰어난데, 한 방향을 보며 정렬되어 있었으며 서로를 믿었다. 징기스칸이 죽을 위기를 겪는 와중에도 몸을 사리지 않고 징기스칸을 구하려 최선을 다했다. 사준사구다.
 
징기스칸의 팀이 고립화되어있던 세계를 연결시키고, 큰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당시에는 세계적으로 무역과 상업에 대한 천시가 심했다. 왜냐하면 경제규모가 따라주지 않기 때문. 여러가지 제반 조건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역의 발달은 그 당시 사람들이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나 재앙을 가져다 줄 수 있었다.

 

중국, 아랍, 서양의 교류에 큰 역할을 하게 되고, 유럽에는 르네상스의 기원이 되었으며, 여러 종교의 문화가 융화되었다. 고려는 많은 피해를 입기도 하였지만, 부마국으로서의 지위를 갖게 되고 무신정권을 청산하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는 전쟁피해, 전염병 전파(페스트) 등 많은 상처들이 있었다. 하지만 몽골은 항복한 국가는 건드리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었으며, 그것은 이후의 피흘리는 일을 차단하는 것이었다. 통합이 되었으면 적극적으로 교류했다.
 
징기스칸 이후로 세계는 처음으로 강하게 연결되었다. 
 

<몽골제국 - 나무위키 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