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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olofv 님의 블로그
징기스칸, 몽골이라는 척박한 공간에서 세계를 정복하다. 본문
유목민의 삶의 양식, 형사취수제는 사회보장제도
예전 유목민 사회에는 형사취수제란 관습이 있었다.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취한다는 풍습(?)이다. 잘 먹고 사는 현 시대의 시선으로는 여성의 인권을 무시하는 것 같아 보이는 야만한 관습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건 현대의 기준이다. 당시 몽골이라는 지역, 그 바닥에서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다.
당시 몽골의 척박한 환경에서 남편을 잃은 여성은 특별한 세력이 있지 않은 이상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부족의 입장에서도 팀원이 없어지면 그만큼 피해가 되었다. 남녀를 떠나서 한 명의 소중한 인력이 가져다주는 이점을 포기할 수 없었다. 형사취수제는 야만적인 관습이라기보다는 당시 환경에서 가장 합리적인 일종의 사회보장제도였다. '수계혼'이라고도 하는데 이에 관해서 흉노족의 노상선우(묵돌선우 아들)때 한문제의 환관이었다 귀순한 중항열과 한나라 사신과의 대화가 유명하다.
몽골의 유목민들은 팀단위로 움직였다. 게르(천막)에서 생활을 하고 이동 생활을 했다. 사냥과 목축 및 약탈로 먹거리를 조달했고 다른 팀과 연대하기도 했다. 어쩔 때는 적팀에게 자다가 습격을 받아 약탈을 당하기도 했다. 우리네가 생각하는 정주형 농경 사회와는 많은 부분이 달랐다. 자기 몸과 재산은 스스로 지켜야 했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팀 단위 생활이 구성된 것이다. 몽골의 남자는 아주 어릴 적부터 말과 친해졌다. 그들은 말 위에서 놀며 자연스럽게 활을 다루게 되었다. 유목민은 현대의 프로젝트형 조직같은 면도 있었다. 여러 부족에게 널리 인정받는 지도자가 생기면 급속히 통합하는 특징이 있었다.
몽골의 척박한 환경, 그에 따른 유목민의 생활 양식안에서 세계사는 일대 변혁을 겪게 된다.
훗날 징기스칸이 되는 테무진(1162~1227)은 사실 몽골에서 좋은 집안출신이었다. 그의 삶은 노예가 되기도 하는 등 다사다난했지만 말이다. 아버지 예수게이는 보르지긴 오복 키야트 씨족장의 아들이었고 몽골 시조 보돈차르의 직계손이라고 한다. 테무진의 아내 부르테가 메르키트 족에게 납치되었을 때 케레이트 부족 옹 칸의 힘을 빌리는 데에도 테무진의 출신이 도움이 되었다.
테무진은 보잘 것 없는 게르에 소속된 어린아이였고, 이복형 벡테르와 어머니 후엘룬이 결혼(형사취수제)할 수도 있는 상황에 자신을 괴롭히는 형 벡테르를 죽이고 가장의 자리에 올랐다. 훗날 이게 문제가 돼 금나라에서 노예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갖은 개고생을 했다. 이후 9살에 만났던 부르테를 다시 만나 부족을 꾸렸다. 케레이트의 옹 칸과 자다란 씨족의 자무카와 연대를 맺는 외교를 하며 안전을 보장받는다. 당시에는 세력이랄 것이 없던 상황이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아내 부르테가 메르키트족에게 납치를 당하고 케레이트족과 함께 아내를 구출하는 과정에서부터 그의 파란만장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부르테를 다시 데려왔을 때 그녀는 임신중이었는데 여기서 태어나는 아들이 킵차크 칸국의 주치(1182~1227)다. 출신 논란(메르키트 콤플렉스)으로 몽골 형제분쟁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후 테무진은 자무카와 생활하며 일정정도의 세력을 형성하게 된다. 테무진은 자무카를 친구로 여겼으나, 자무카는 테무진을 견제하고 거리를 두었다.
기존의 몽골 바닥에서는 부족간 이합집산이 복잡하게 이뤄졌다. 테무진의 세력은 이러한 관습과 다르게 통합적으로 점점 불어났다. 효율적인 조직 구조를 만들었다. 테무진은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효율적인 원칙이 있었고 이를 준수함으로 조직 안의 신뢰를 쌓아갈 수 있었다. 신분에 구속되지않는 인사 원칙과 물자 분배에서 있을 수 있는 불만을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나중에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모순적인 의사결정 구조는 당장의 출혈이 있더라도 수정했다.
물자 분배부터 신뢰있는 조직 구조는 적마저 통합해서 같은 편으로 바꿔주는 것이었다. 그와 마치 하나인 듯한 사준사구, 8인의 건국공신은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었다. 주르킨, 타이치우드 부족, 타타르, 옹 칸, 자무카, 나이만 부족을 제압하고 결국 테무진은 몽골을 통합한다. 징기스칸은 호전적인 마초 스타일로 몽골을 정복한 게 아니라 조직의 장으로서 내부에 생길 수 있는 문제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이었다. 지지 않으려는 과정에서 살아남으면서 상대편마저도 취직(?)하고 싶게 만든 것이다. 부하들의 죽음을 최소화하는 전투 방식을 추구했고 필연적으로 전술과 통신, 편제가 발전했다.
내부를 통합하고 외부의 호라즘 왕국, 서하(탕구트), 금나라(여진) 정복을 하는 과정에서 다른 문명권의 좋은 기술이나 제도가 있으면 합리적으로 받아들이는 데에 주저하지 앉았다. 예컨대 중국의 화약, 나침반, 종이 등이다. 교통수단의 미비 등으로 고립화되어있던 세계에서 여러 곳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연결했다. 그 연결은 전 유라시아 대륙이 대상이었다.


조직과 구조의 천재, 징기스칸
될대로 되라! 자연의 보이지 않는 손이 이끌던 혼란의 몽골에서 징기스칸은 집단간 윈-윈을 가능케 하는 규율을 만들었다. 기존에는 집단간 과도한 경쟁으로 사냥감이 씨가 말라 서로에게 굶주림만을 가져다주는 악순환을 피할 수 없었다. 징기스칸은 일정시기에는 사냥을 금해 동물들이 번식하고 수를 늘릴 수 있게 했다. 겨울이나 식량이 부족한 시기가 없어졌다. 납득할 수 없던 뒤죽박죽 물자분배, 신분차별, 여성 납치 등을 없애 부족간 분쟁과 전쟁의 소지를 사전에 차단했다. 문제가 있으면 어떻게든 해결했다. 기존의 방법에는 얽매이지 않았다. 관습의 저항을 깨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렇지만 그는 그걸 깨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해결해갔다.
징기스칸은 조직과 정치, 군사의 천재였다. 당시 몽골기병은 세계를 먹을 만큼 강했던 타이밍이었기도 하지만 그 조직체계와 효율적인 통신, 그 이전의 신뢰 영역을 해결한 유일한 리더였던 것이다. 역사에서는 위대한 지휘관이더라도 카이사르(BC100~BC44)같이 내부에서 암살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징기스칸의 팀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한 방향을 보며 정렬되어 있었으며 서로를 믿었다. 징기스칸이 죽을 위기를 겪는 와중에도 몸을 사리지 않고 징기스칸을 구하기도 했다.
징기스칸의 팀이 고립화되어있던 세계를 연결시키고 큰 변화을 촉진했다. 당시에는 세계적으로 무역과 상업에 대한 천시가 심했다. 왜냐하면 경제규모가 따라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여러가지 제반 조건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무역의 발달은 그 당시 사람들이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나 재앙이나 위기를 가져다 줄 수도 있었다. 그러한 공포를 깨뜨렸다.(강제적이긴 하지만 시대적 한계다.)
중국, 아랍, 서양의 교류에 교차로 역할을 하고 유럽에는 르네상스의 기원이 되었다. 여러 종교의 문화가 융화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고려는 몽골에게 많은 피해를 입기도 하였지만 부마국으로서의 지위를 갖게 되는 일도 있었다. 이는 내부의 무신정권을 청산하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세계가 연결되는 과정에서 전쟁피해, 전염병 전파(페스트) 등 많은 상처들이 있었다. 하지만 몽골은 항복한 국가는 건드리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었으며 그것은 이후의 피흘리는 일을 차단하는 것이었다. 통합이 되었으면 적극적으로 교류했다. 징기스칸 이후로 세계는 처음으로 강하게 연결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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