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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현재까지 이겨온 팀의 기록

Toolofv 2024. 6. 7. 18:43
 

<수에즈 운하 - 구글지도>

 
부분의 합은 전체가 아니다. 전체가 부분을 결정한다. 

 

 

수학은 과학을 서술하는 매우 정확한 언어이지만, 거기에는 이미 합의되어 있는 많은 부분들이 있다.

이 것을 자연 및 현실에 적용할 때, 이미 전제되어있는 부분들을 살피지 않아 엔트로피를 무시하고 

환원주의에 빠지기도 한다.

 

라디오나 컴퓨터를 분해한 후, 부품의 집합만 갖고 있다고 작동이 되지는 않는다.

부품의 집합에 더해 부품조립의 질서가 필요하다.

여기에는 인간의 관측과 예상과는 다른 비용이 생긴다. 예를 들면, 조립하는 인간의 노동력이다. 

 

세상 만사 모든 것에는 묶어주는 질서의 비용이 있다. 하지만 사실 이 것은 자연을 관측대상으로 하여 역추적하는 인간의 방법상의 순서와 관점일 뿐,  실제 존재하는 자연으로는 그 반대다. 

엔트로피란 질서해체의 에너지값인 것이다.

 

 

전쟁, 그 중에서 전투의 질서

 

 

가장 큰 차원의 질서로부터, 모든 것은 엔트로피 법칙에 의해 해체되어 가는데, 전쟁이라면 무엇이 가장 큰 차원의 질서일까?

 

먼저 어느 한 전장에서 지리적 요인 등을 제외하고 본다면, 

 

1. 공군의 제공권 장악

2. 기갑 및 지상군 장비

3. 편제 및 병력 투입 전술 

4. 병력의 숙련도 및 훈련도

5. 병력의 수

 

단계적으로 위의 구조에서 평형이 이루어졌을 시에만 하위 단계의 경쟁이 유효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위 단계의 질서에서 이미 게임이 끝났다면, 밑의 단계의 경쟁은 전투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수도 있다.

 

상부 구조, 차원에서 먼저 이겨야 승리할 가능성이 높으며, 병력의 수로 결판날 만큼 전장이 치열하다면, 매우 복잡다단한 혼돈이 연출되는 것이다. (낮은 질서 단계의 경쟁까지 간다면, 매우 세분화되어 통제하기가 극도로 어렵다. 물은 쏟아지기 전에 통제가 가능하고, 터진 모래를 주어담는 것은 쏟는 것에 비해 머리가 아프기 마련이다.)

 

 

상부 구조, 차원에서 이미 결정되었다고!

 

 

미국에서 링컨은 하원의원 한번의 정치 경력으로 시작하여 연방정부의 대통령이 되었다.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삽질도 하였고, 그의 집권 시기는 당시 기득권 및 언론의 포격(?) 등으로 다사다난했다. 그래도 결국 남북전쟁은 북부의 승리로 끝났다. 이미 총력전에서 북부가 이겨 있었기 때문이다. 남부는 초반에는 조금 선전했지만 애초에 북부와 총력전에서 이길만한 구조를 갖고 있지 않았다. 철도, 식량, 무기 등의 보급, 의사결정구조, 부대 편제, 동원력 등 어느 하나 싸움이 되지 않았던 거다. 

 

미국-멕시코 전쟁에도 참전했던 노장인 '윈필드 스콧'이 구상하고 '조지 맥클레런', '율리시스 S. 그랜트' 등이 실행한 '아나콘다 계획' (미시시피 강과 해상 봉쇄)을 큰 전략으로 하여 판세가 구성되었고, 각 전투에서는 '스톤월 잭슨'의 신출귀몰한 기동 등으로 인해 남부가 병력 교환비 면에서 꽤 선전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결국 '피로스의 승리'(댓가가 큰 허울뿐인 승리)일 뿐이었고, 대세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 

 

북부는 '율리시스 S. 그랜트', '윌리엄 태쿰세 셔먼' 등 명장들과 각 부대 병사들의 활약으로 '빅스버그 포위전', '애틀란타 전투', '서배너 함락'(셔먼의 바다로의 행진) 등 서부전역에서 야금야금 남부의 중요한 요지를 점령해갔다.

 

남부의 장군 '로버트 리'는 '동부전역에서 워싱턴 D.C.를 먹고 링컨이랑 협상해서 끝내는 것으로 간다!' 했지만, '앤티텀 전투', '게티스버그 전투' 등에서 압도를 하지 못하다가, 결국 '1차 세계대전'의 프리퀼(...) 격인 '피터스버그 포위전'에서 버티지 못하고, 앞 뒤로 압착당하다가 남부 수도 리치먼드가 넘어갈 위기에 처하자 항복하게 된다. 

 


<미국 남북전쟁(1861~1865)의 북군(연방)의 아나콘다 계획(출처 : 나무위키>

 

 

2차 세계 대전 때, 초반에 기세를 올리는 추축국이었음에도 졸전을 보여준 이탈리아의 삽질로 인해, '북아프리카전역'(1940. 6. ~1943. 5.)이 개설되었고, 그곳에서 독일의 평민 출신 명장 '에르빈 롬멜'은 신출귀몰한 기동전으로 영국에게 많은 손실을 강요한다.  하지만 결국 독일은 북아프리카전역의 핵심인 몰타 섬 인근의 지중해 해상 보급 주도권을 가질만한 여력이 없었고, 롬멜의 '부분'에서의 승전과 활약은 독일의 의도와 다르게 더 많은 자원을 북아프리카로 투입하게끔 만들어, 이후 독소전쟁에 영향을 주었다. 

 

(후일 롬멜은 프랑스 쪽 지역에서 상륙작전을 방어하는 B집단군의 사령관이 되었다가, 그전의 활약과는 별개로 1944. 7. 20. 에 일어난 히틀러 암살미수작전에 연루되어, 자살을 강요받고, 생을 마감한다.)

 


<북아프리카 전선(1940~1943) (출처 : 나무위키)>

 


 

 

우리는 같은 인류, 지구 팀이지만 우리 내부에서 본다면 역사는 동원을 잘한 팀이 이기고, 그 동원의 구조를 복제하게 만든 기록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과거(혹은 현재에도)에는 그 복제의 과정이 많이 잔혹했던 적도 있었다. 그 것을 합리적이고, 거칠지 않게끔 하는 것도 역사의 발전일 것이다.

 

고대부터 전쟁에 대한 역사를 보면, 동원을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 (란체스터의 법칙으로 보면,기술 등도 동원력으로 환원된다고 본다.) 그 구조는 지속가능한가? 의 경쟁 또한 있다. 그리고 그 효율적 동원체계는 전파된다.

 

인류 내부의 경쟁에서 각 국가는 모든 것을 동원하고, 다양한 창의적인 능력자들이 능력을 펼칠 수 있게 두어야 한다. 적재적소에 배치가 가능하면 더 좋다. 그런데 피부색깔로 차별하고 귀족이니, 여성이니 학력이 어쨌니하며 배제하면서 경쟁에 응한다는 것은 세상을 똑바로 보지 않는 진지함이 결여된 태도인 것이다.

 

 

동원력의 구조와 민주주의

 

 

백년전쟁에서 프랑스는 귀족들끼리만 전쟁하며 기사도 어쩌구하면서 마치 태평양전쟁에서의 군국주의 일본을 떠올리게 하는 '반자이어택'(반자이 어택은 넘 심하고, '체면전쟁'이 더 어울리는 단어일 수도 있겠다.)을 하며, 엎치락뒤치락하다 결국 잔다르크를 위시한 평민의 창의성을 동원하여 승리했다. 귀족들이 씨가 말라서 이기려다 보니 평민들이 동원되었고, 당시 귀족들의 체면전쟁의 허례의식들이 평민의 창의성에 깨졌다. 그 평민의 동원을 가능케한 것이 잔다르크의 능력이었다. 

 

 

2차대전 후의 이집트도 1948년, 1956년, 1967년의 1~3차 중동 전쟁에서 패배한 후, 1973년의 4차 중동 전쟁에서야 여러 군비의 정비, 편제 개선, 군에 젊은 대학생을 받아들여 장교와 병사의 장벽과 불신을 허물었다. 제대로 된 작전 계획을 세우고, 대공 미사일, 대전차 장비 등을 각잡고 사용하여 선전했다. 일단 시나이반도를 되찾을 때까지는 진지했던 거다. 승리가 절박했다.(이집트는 13세기 맘루크 왕조 이후 오스만 제국 및 무함마드알리 왕조일 때도 맘루크 계통의 세력이 건재했었고, 그에 따라 군의 차별의식에도 영향을 끼친 듯 하다. 영국 식민지 시절, 이집트군 장교 아흐마드 우라비(1882)때의 분위기도 그랬다. 이집트의 맘루크, 오스만 제국의 예니체리도 13~15세기 당시에는 엄청난 엘리트군사였는데, 그 잔재가 남았던 것.)

 

 

미국 남북전쟁 등에서의 노예제 폐지는 고결한 인권 의식으로 싸워 이룬 것이 아니고(일정부분 영향은 있겠지만), 동원력, 생산력과 관련이 있다. 당시 미국에서는 관세 정책 혹은 경제 체제에 대한 노예제냐, 노예제폐지냐의 대립이 있었고, 이 대립이 기존의 미봉책 타협이 불가능해지면서, 대선 불복 - 남북전쟁으로 구현되었다.

 

 

핵심은 동원력이다.

 

 

국민이 사적으로 유력자에게 속해있으면 동원할 수 없고, 다른 조건이 같으면 노예제를 가진 팀이 지기 때문에 노예제가 없는 팀(북부)이 이긴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삼단노선, 고대 로마의 전쟁파업 등 무수한 사례가 그렇다. 펠로폰네소스전쟁 당시의 아테네만 해도 전쟁해야 되는데, 노잡이들의 권력이 커져 노예해방을 해줄 수 밖에 없었다.(미국 남부는 전쟁후반 흑인노예 동원 여론이 있기도 했지만, 해방해주기 싫어서 혹은 총구를 뒤로 돌릴까봐 안했다.) 노예제는 도덕적 당위를 떠나, 현실의 경쟁력으로 봐도 없어질만한 비효율적인 제도였던 것이다. (일부 고립된 환경에서는 다를 수도 있다...)

 

민주주의, 인권이 이긴 것은 그래야 동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의 모든 것이 이상은 아니지만, '이상'과 제일 가까워서 이긴 것이다. 실제로 전쟁에서 이긴 것이다. 어떤 일부의 사람들이 생각하듯, 민주주의는 나약한 제도가 아니고, 전쟁을 하면서 '승리냐, 패배냐'에 따른 급박한 상황에 몰리게 되면서, 기존의 군더더기(차별, 사다리걷어차기, 부정부패 등)를 일단은 가능한대로 최대한 제거한 제도인 것이다. 

 

민주주의가 완벽하고, 이상적인 제도라서 하는 것이 아니고,

경쟁의 압박에서 도출된 하지 않을 수 없는 제도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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