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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감자, 고구마의 보급과 이중의 역설

Toolofv 2024. 6. 2. 17:56

 

감자, 고구마의 보급과 이중의 역설

 

 

 

 

신대륙발견 이후 감자, 고구마, 옥수수 등이 전 지구에 보급되는 것은 필연적인 방향이었다.

감자는 춥고, 거친 환경에서도 잘자라며 토지 당 생산력이 매우 높다. 고구마 또한 마찬가지.

가지과에 속하는 덩이줄기 작물이며, 남아메리카 페루와 에콰도르 등 안데스 산맥 일대가 원산지라고 한다.

 

감자는 보관이 쉽지 않아, 세금으로 낼 수 있는 품목이 아니었으며, 재배기간도 짧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기근 때마다 소중한 먹거리가 되었다.

 

1847년 아일랜드 대기근은 당시 영국이 밀, 옥수수 등 작물을 가혹하게 수탈(?)하는 가운데, 아일랜드인들이 주식으로 삼던 감자의 '역병'으로 인해 벌어졌다. 무려 100만 이상의 사람이 감자의 전멸로 인해 굶어죽었다고 한다. 이후 1848년의 유럽혁명의 물결과 맞물려 아일랜드인, 독일인들이 미국으로 많이 이민을 가게 되기도 했다. (미국으로 넘어간 아일랜드, 독일인계의 이민자들은 북부에 자리잡게 되고, 공업화된 북부와 노예제를 통한 목화 농장의 남부의 갈등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후 식량 생산력의 혁신은 독가스를 개발하기도 한 독일 과학자 프릿츠 하버의 질소비료 혁신이었다.

감자와 고구마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경로를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는데, 감자는 추운 북쪽지방에서부터 들어오고, 고구마는 따뜻한 남쪽지방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고구마는 따뜻한 지방에서 잘 자라는 작물이다.

조선시대에는 북에서 들어왔다하여 '북저'라고 불렀다고 하고, 국내에는 전분량이 많은 수미감자가 주로 재배되었으며, 주로 국이나 찌개에 사용되었다. 감자튀김같은 류는 미국 아이다호 주의 분질감자가 튀겼을 때, 바삭바삭한 맛을 내 적합하다고 한다.

 

 


<감자를 먹는 사람들 - 빈센트 반 고흐>

 

 



유럽 각 국가에서는 감자를 받아들이는 데 결과가 상반된 에피소드가 있는데, 여기에 이중의 역설 구조가 보인다.
영국에서는 엘리자베스1세가 감자를 권장하려다, 솔라닌중독에 걸려 감자 보급이 19세기에 와서야 이루어졌다고 하고,
프랑스와 프로이센에서는 감자를 군사가 지키게 하고, ‘귀족만이 먹을 수 있다.’ 라고 하여 오히려 보급을 촉진했다고 한다.

이는 구조론에서 말하는 역사에서의 '이중의 역설' 사례이다.
영국에서는 감자에 대해 잘 알지 못한 채, 의도적으로 보급하려 하면서 역설이 작동하여 반대의 결과가 나왔지만,
더 큰 차원에서의 감자의 생산력 혁신은 막을 수 없는 전 지구적인 것이었기에 결국 보급된 것은 이중의 역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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