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olofv 님의 블로그

조면기의 역설과 서울의 리어카 본문

역사

조면기의 역설과 서울의 리어카

Toolofv 2025. 1. 15. 02:38

 

<일라이 휘트니(Eli Whitney)가 개발한 조면기(1793), 출처:나무위키>

 

조면기는 목화솜에서 씨앗을 분리하는 기계다. 현대식 조면기(1793)는 미국의 일라이 휘트니(Eli Whitney)가 고안했다. 조면기가 개발되기 전에는 밀대와 손가락으로 씨앗을 분리하는 방식으로 생산성이 높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미국 남부에서 플랜테이션 농업으로 목화, 담배 등을 재배하고 있었는데 목화는 수익성이 좋지 않은 작물 취급을 받았다. 

일라이 휘트니는 남부의 농장에서 흑인노예들이 손가락을 다쳐가며 힘들게 일하는 모습을 보았고, 이내 조면기를 개발하는데 착수했다. 그가 만든 조면기는 투입구에 목화를 넣고 손잡이를 돌리는 식이었다. 이 기계로 인해 한 사람당 생산성이 수백배나 올랐다고 한다. 조면기의 개발로 흑인 노예들이 편하게 일할 수 있게 되었다...(?)

 
 
 
...라고 끝나면 섬뜩한 거짓말이다. 중노동에 시달리는 흑인 노예들을 위해 특별히 조면기를 하사하노라···. 일단 뭔가 배알이 꼴리지 않는가? 똑같이 똥싸는 사람인데 뭐 어쩌라구? 스탕달의 적과 흑(1830)에서 쥘리엥 소렐이 귀족 집안에서 가정교사로 일하면서 묘한 모욕을 받으며 역겹다고 생각했던 그거다. 실제로 일라이 휘트니가 흑인 노예들을 불쌍히 여겨 만들었는지는 모르겠다. 나중에 귀족주의로 포장한 것일지도.
 
어쨌든 조면기의 등장은 목화 농장의 수익성을 급격하게 높여주었다. 목화 농장에 필요한 노동력이 줄어든 만큼 이익이 증가했고 목화 농장은 우후죽순 생겨나게 되었다. 1793년 당시 6만kg에 불과했던 목화 생산량은 남북전쟁(1861~1865) 직전인 1860년에 8,260만kg까지 증가했고 흑인 노예 인구도 폭증하여 65만명에서 400만명까지 늘게 되었다.
 
미국 남부는 흑인 노예없이는 돌아가지 않는 사회가 되었다. 공업화된 북부에는 1848년경 아일랜드 대기근과 유럽 혁명 실패로 자유주의자들이 대거 들어왔고 남부는 선거로 뒤집을 수 없다는 구도를 확인한 후 남북전쟁(1861~1865)을 일으켰다. 북부가 이겨서 노예제가 폐지되었다. 일라이 휘트니를 탓하는 것은 아니다. 도구는 잘못이 없다. 언제까지 손이나 밀대로 목화 씨앗을 깔 순 없다. 
 
역사를 보면 이런 역설적 사례들이 있다. 선의가 선의로 작동하지 않는 사태다. 선의라는 이름으로 한 행동이 현실의 구조에 맞물릴 때 의도와는 반대가 되는 일이 무궁무진하다. 당신이 선한 의도를 행하고 세상에 뭔가 좋은 영향을 끼치고자 한다면 이 사건을 보고 고민을 해봐야 한다. 선의로 하는 행동이 하지 말아야할 나쁜 행동이 아니고 정교한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금속활자만 해도 처음에는 마녀사냥에 큰 영향을 주었다.
 
 

천원 벌기 위해 900번 숙인다…폐지 수집 노인 위한 '특별한 수레'

[앵커] 이런 한파에도 폐지를 주우러 나가야 하는 어르신들이 있습니다. 하루 평균 900번씩 허리를 굽혀가며 폐지를 줍고 있는데 한 병원과 지자체가 어르신들의 고통을 덜어줄 특별한 수레를 만

v.daum.net

2025. 1. 9. 폐지수집 노인 관련 기사
 
 
폐지수집 노인에게 새 리어카를 제공해주겠다는 것도 같다. 이게 선의인가? 폐지나 수집하면서 살아가라는 것인가? 정녕 여기에 어떤 비릿한 모욕감도 느끼지 못한다는 말인가? 리어카를 만들어주면 폐지의 굴레에서 오히려 더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생각안해봤다는 말인가? 폐지 모아서 돈을 얼마나 버는지 한 번 해봐라.
 
물론 노인이 폐지를 줍는 것이 자신을 돌보지 않는 자식들에게 메시지를 주는 것이거나 사안별로 다양하게 사회와 꼬인 뭔가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폐지줍는 것만 할 수 있기 때문에 빠져나갈 수 없는 수렁에 빠진 노인들도 있다. 그 분들이 뭐 특별하게 못나서 그런 것이 아니다. 멀쩡한데 어쩌다 그러한 환경으로 빠진 분들도 있을 수 있다. 건강하고 머리도 좋은데 할 게 없어서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생활을 해결할 수 있는 일자리를 자존심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지원하고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더 낫다. 노인들에게 새 리어카를 만들어주는 식의 역겨운 선의보다는 말이다. 선의는 제대로 기술적으로 행해야 한다. 스탕달이 묘사한 귀족 사회의 그거는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시선을 들키는 거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