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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olofv 님의 블로그
민주주의는 '-ism'이 아니라 'Democracy'다. 본문
민주주의는 '-ism'이 아니라 'Democracy'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사전 상의 의미는 국민이 권력을 가지고 그 권력을 스스로 행사하는 제도다. 기본적 인권, 자유권, 평등권, 다수결의 원리, 법치주의 등을 기본원리로 한다고 나와있다. 민주주의는 '주의'가 아니라 '제도'다. 영어로도 '-ism'이 붙지 않고 'Democracy' 혹은 'Democratic system'이라고 번역된다.
데모크라시를 '민주주의'로 번역하게 된 것은 아무래도 조선왕조 500년을 거쳐온 역사적인 영향이 컸다. '민주주의'라기보다는 정확히 '민주제', 민주정체'라는 말이 더 부합하는데 말이다. 이러한 관성은 아직도 남아있다. 민주주의라고 하면 무언가 못미더운, 답답한 제도라는 일부의 인식이 있다. 모든 국민의 의견을 섞어 모두가 납득하는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대다수가 납득해야 한다는 것은 맞다. 다수결의 원리를 현대 민주 국가에서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 국가에서 언제나 다수결의 원리를 적용할 수는 없다. 보통은 선거를 통한 대의제 민주주의를 골자로 한다. 매우 중대한 사안을 결정해야할 경우에나 국민 투표를 통해서 다수결의 원리를 작동시킨다.
중요성, 심각성이 드러나는데 신경쓰지 못했던 사안들은 같은 의사표현을 하는 여론을 응집시켜 집회, 시민단체 활동, 인터넷, SNS, 언론을 통한 공론화로 보완한다. 지리적 조건이나 교통수단, 정보전달 수단, 교육이 기반되어 있어야 한다. 공론화하는 과정에서 사안의 우선순위가 자연히 정렬되는 편이다. 민주주의는 국민들의 끊임없는 참여와 사안에 대한 습득, 토론을 필요로 한다. 피곤할 수도 있고 비효율적으로 다가온다.
비효율의 역설과 효율의 위험
민주주의는 비효율적인 면이 있다. 그러나 이 비효율은 더 큰 차원에서 아닌 것을 걸러주는 장치가 된다. 시행착오를 겪지만 그 것은 더 큰 위험을 차단하는 장치다. 환경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방향을 바꿀 수 없는 게 더 큰 위험이고 비효율이기 때문이다. 반복된 효율적 결정과 실행은 역설적인 결과를 낳는다. 환경 변화를 감지하는 능력을 퇴화시킨다. 뒤로 리스크가 쌓인다. 의사결정의 정답은 정답을 찍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활발하고 유연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거기서 아닌 것을 제거해 나가는 것이다.
청나라의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의 치세가 그렇다. 천재 황제가 너무 잘 다스리니 중국인들은 세계에 대한 관심을 잃고 변화의 동력을 잃어버렸다. 영국, 프랑스 등지와 교류하면서도 서구의 과학 혁명과 산업혁명 및 도구의 발전을 무시했다. 서구인들을 그냥 지들끼리 치고박는 야만인으로 생각하다가 어느 순간 역전되어 아편전쟁(1840~1860)과 의화단 운동(1899~1901)에서 곤혹을 치뤘다.
지도자 한 명의 결정과 그에 맞춘 군더더기없는 실행은 결정과 실행에만 초점을 맞추면 효율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것은 인간의 관점이다. 독재가 쓰러져 왔던 이유는 소수의 머리만 의사결정을 하기 때문에 변화에 대응을 못하고 적절히 방향전환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화인민공화국 마오쩌둥의 대약진운동(1958~1962)이 실패로 드러나도 아무도 방향을 바꿀 수 없었다. 실행 과정에서 새로운 효율이나 수정된 방법이 발견되어서 그 사안이 중앙으로 올라와 방향전환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아직까지 인간이 잘 모르는 부분이 많다. 정답을 써내려가는 동작 자체는 효율적이었지만 제출한 정답이 맞지 않는다. 참새가 농작물을 쪼아 먹는다고 그 것을 제거하다가 병충해가 늘어나서 농사가 폭망했다. 엄청난 사람들이 기근으로 죽는 사태가 일어났다. 윤석열이 의대증원을 무리하게 밀어붙혀 안그래도 이해관계에 민감한 의사들이 응급실을 떠나도록 만들었다. 그럼에도 방향을 바꾸지 못했다. 독재자도 내부의 권력 관계에 압박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바꿀 수 없다. 바꾸면 권위가 추락하고 결국 죽는다.
민주주의는 지도자의 의사결정과 더불어 여론의 압박이 있다. 방향 전환을 할 수 있다. 또 민간에서 새로운 도구의 개발이나 병목 현상의 제거로 효율의 증대가 생기면 '자연'이 안건으로 상정하여 올리도록 한다. 경직된 체제에서는 불가능하다. 지도자나 중앙 권력이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도구나 아이디어가 등장할 수 있다. 자연스럽게 그때까지 정답이라고 여겨져 왔던 것들이 퇴장한다.
민주주의는 권력의 분산이다.
민주주의는 권력의 분산이다. 권력을 상호간 견제하게 하는 제도다. '왕'이란 일원화된 권력의 단점은 역사안에서 켜켜이 쌓였다. 위에서 든 이유와 같다. 국가의 의사결정을 단지 몇 사람이 한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매우 위험하다. 권력의 일원화와 견제 장치의 미비는 경직된 전달 체계를 만든다. 합리적이고 긴밀한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 보고할 일을 보고하지 않고 명확한 의사전달을 방해한다.
박정희의 '임자 맘대로 해.'같은 애매한 의사소통 방법이다. 그게 전파되다 보면 이상한 방향으로 증폭되어 누구도 돌릴 수 없는 비극이 된다. 왕의 스트레스는 엄청나다. 왕도 책임을 회피하고 잘못되면 전가한다. '적당히 손 좀 봐줘.'같은 애매한 말이 증폭되어 학살 혹은 전쟁으로 치닫는다. 척하면 척이라는 건데 중요한 순간에 한번만 잘 못 작동해도 되돌릴 수 없다.
사실 왕정도 인간의 입장일 뿐 진실과 다른 면이 있다. 제대로 붙으면 국민이 언제나 뒤집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국민이 뭉칠 도구가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왕족하도록 그냥 두었던 거다. 다른 나라와 외교할 때 건건이 대표자를 선출하기 어려웠다. 교통, 정보전달 수단의 미비와 의견 통합의 기술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또 국민입장에서 귀족들을 견제하는데 왕이 도움되기도 했다. 왕도 국민을 통해 귀족을 견제했다. 1~3대 이후의 왕은 3D직업이었다. 그래서 그냥 거기 박아두었던 거다. 나라가 뒤집힐 만큼 큰 일이 있어서 온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경우 왕은 제발로 단두대로 간다. 드디어 은퇴다.
민주주의는 분산된 권한을 디자인하는 체제다. 분산된 권한을 조정해 입체적인 프로그램을 짠다. 전 국민이 이러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역량을 키우면서 성숙해진다. 민주 국가라는 토대는 참여자에게 기본적인 헌법적 권한을 부여한다. 집회 결사의 자유·표현의 자유 등이다. 표현의 자유를 기반으로 여러 의견을 낼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의사결정에 받아들여지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만약 정답이 아닌 의사결정, 헌법에 부합하지 않는 결정이 있을 경우 다른 권한들이 이를 견제하고 잘라낸다.
민주주의는 경쟁을 통해 생긴 제도다.
민주주의는 국가간 경쟁을 통해 생긴 제도다. 동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의 페르시아 전쟁(BC491~BC449)과 펠로폰네소스 전쟁(BC431~BC404)에서 삼단노선의 노를 젓는 평민들의 권력이 커진 이유다.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전쟁이 한창일 때 노젓는 인력이 귀해지자 자연히 그들의 몸값이 상승했다. 높아진 몸값만큼 목청도 커지는 거다.
아르기누사이 해전(BC406)에서 아테네는 군인이 될 수 있는 사람이면 자유인이든 노예든 가리지 않고 배에 태웠다. 높아진 노잡이들의 발언권은 지휘관급 인사도 많이 부족한 상황에서 전쟁 중 시신을 수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8명의 장군 중 6명의 목을 자르게 하기도 했다. 고대 로마도 비슷하다. 평민들이 전쟁을 하는데 원로원의 귀족들이 전리품을 계속 취하자 불만을 가진 평민들은 전쟁 파업을 했다. 그 과정에서 평민의 권리가 신장되었다.
현대 사회에서도 동원력은 매우 중요하다. 동원력 경쟁에 의해 민주주의를 할 수 밖에 없다. 자발적인 동원은 강제 동원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프랑스혁명전쟁(1792)에서 발미전투로 자발적으로 동원된 혁명군은 그 힘을 증명했다. 귀족을 지휘관으로 하는 봉건 군대는 교리가 매우 단조로울 수 밖에 없었다. 억지로 동원되었기 때문에 창의적인 전투는 불가능했다. 귀족 장교는 붙잡혀도 몸값주고 살아가는데 애꿎은 병사들만 죽어나갔다. 그러니 빌미만 있으면 도망간다.
민주주의는 주변국의 연대를 필요로 한다.
민주주의는 해야할 이상적인 제도가 아니라 전쟁에서 이겨서 살아남은 제도다. 우리가 하지 않더라도 민주주의로의 압박을 받는다. 세계화로 연결된 시대에 민주주의 이탈은 국제적 고립, 안보의 위기, 경제 위기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국가는 대외적인 환경 변화로 수렁에 빠졌던 나치 독일처럼 잘못된 결정으로 휩쓸려 갈 경우 이해관계가 있는 주변국들이 반대파를 지원할 수 있다.
대화 창구가 있다. 권력이 일원화된 국가가 세계를 수렁에 끌고 갈 경우에 어떠한 대화 창구도 없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특히 핵무기 등의 살상수단이 고도로 발달한 현대에는 서로가 서로를 견제를 할 수 있는 장치를 필요로 한다. 민주주의를 채택하는 것이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라는 증명서가 된다.
민주주의를 모두가 좋아하지는 않는다.
민주주의는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만 하는 제도다. 살 만하고 긴장이 풀리면 언제든지 사람들은 봉건적인 제도로 돌아가고자 한다. 왜냐하면 굉장히 피곤한 것이기 때문이다. 온 참가자가 긴장을 하고 엔진을 돌려야 하는 거다. 운동선수가 운동을 열심히 하는 상태다. 운동을 끝내고 쉬고 싶다. 활발하지만 운동을 계속 해야하는 상태에서 편하고 정적인 상태로 가려 하는 것은 자연 법칙이다.
그러한 동력의 저하를 여러 사회적 압박으로 해결한다. 지리적 압박, 물리적 압박, 경제적 압박, 문화의 압박, 트렌드의 압박이다. 압력이 부족해 엔진이 돌아가지 않을 때 사회는 봉건주의로 후퇴한다. 여러 압박들 중 입구에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새로운 변화다. 지정학의 변화, 새로운 도구의 출현, 자원의 발견같은 것이다. 한국의 민주주의도 여러 선각자들로 인해 발전한 것도 있지만 인터넷, SNS, 스마트폰이 기반이 된 점이 크다.
새로운 도구의 등장과 그에 맞물리는 여러 변화들이 새로운 동력이 된다. 동력은 사회의 연결을 긴밀하게 한다. 연결이 긴밀해질수록 정치와 경제에도 영향을 미친다. 사람들은 닫힌 계의 제로섬 게임을 벗어나 새롭게 계로 들어온 먹거리를 확보하려 한다. 그 과정에서 동원되고 중구난방 부딪히지 않고 한 방향으로 간다. 진짜 효율을 달성한다.
민주주의는 하고 싶어서 하는 게임이 아니다. 해야만 하는 어쩔 수 없는 게임이다. 게임 안에서 안하면 지기 때문에 해야하는 여러 번거로움을 감수하는 것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 하게 된다. 그게 동력이다. 그 동력을 조달하는 방법이 있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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