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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협치타령은 독재사관이다.

Toolofv 2024. 12. 26.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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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역사보다 위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사실 역사책을 보면 전부 다 치열하게 죽고 죽이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역사의 흐름은 인간의 현재 삶과 알 수 없는 미래를 예측하고 볼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런데 여기에는 역사보다 더욱 높은 곳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전제가 붙는다. 진리를 긍정하고 인간을 긍정해야만 한다. 역사책은 19금의 매우 잔인하고 무서운 이야기들로 가득하지만 진리를 긍정하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역사는 결국 인간을 긍정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 내부에만 매몰되어 이러한 피로 쓰여진 사건들을 본다면 왜곡된 역사관을 갖게 될 수도 있다. 역사의 뿌리와 연결되지 않은 비인간적인 관점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또 반대로 이런 의문이나 하나마나한 정답을 가질지도 모른다. '다들 착하게 살고 타협하고 협치하면서 살면 되잖아...?' 말은 정말 쉽고 정답이지만 그게 그렇게 쉽게 가능했으면 역사책이 피로 쓰여져 있을 이유가 없다. 역사적으로 누이좋고 매부좋은 협치가 작동한 적은 없다. 
 

협치, 탕평책은 독재사관이다.

 
 
만약 10명의 사람 중 8명이 폭력을 쓰지 않기로 합의를 해도 2명은 그 점을 이용해 폭력을 이용해 주도권을 잡으려 한다. '너네는 폭력 안쓰기로 약속했잖아?' 핵확산방지조약(NPT, 1970)을 통해 핵무기를 억제해도 어떤 나라들은 '너희 핵은 가만 놔두고 왜 우리한테 못 만들게 하냐?'라고 한다. 인류는 외계인의 지구 침공을 받지 않는 한, 더 상위의 목표를 발견하지 않는 한 이러한 패턴을 피할 수 없다. 
 
협치는 독재사관이다. 옥상옥 독재자가 정당을 교착시켜서 자기 입맛대로 하고자 할 때 쓰는 기술이다. 조선사 영조, 정조의 탕평책이 그렇다. 붕당정치가 있어서 그나마 조선이 500년동안 간 것이다. 탕평책이 그렇게 좋은 정치였다면 정조 이후 왜 안동 김씨의 세도 정치(1800~)로 흘렀을까? 군사정권 시절 탕평책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의도적으로 왜곡했다.
 
당시 붕당정치도 폐해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 것은 외교나 경제의 미비로 인한 결과다. 붕당정치 시스템 자체는 그 시대에 다른 국가와 비교해도 매우 선진적인 시스템이었다. 
 
국가의 운영은 바깥의 환경에 따라 어느 한 쪽의 방향을 선택하는 것이다. 짜장면과 짬뽕을 섞을 수 없다. 방향에 대해 논쟁은 있을 수 있지만 이리 섞고, 저리 섞는 것은 의사결정이 아니다. 논쟁은 하되 결정은 좌회전, 우회전, 직진 중에 하나다. 좌회전 도로에서 '왜 우회전은 소외시키냐?'라며 섞으라고 한다면 기다리고 있는 것은 교통사고다.
 
물론 윤석열과 내란 잔당들이 비상계엄 쿠데타로 하고자 했던 것은 누구도 합의하지 않은 후진이다. 버스는 앞으로만 가기 때문이다. 앞으로 가도록 묵시적으로 합의되어 있기 때문이다. 뒤로 가고자 한다면 버스에서 내리면 된다.
 

<영조의 탕평책 삽화, 출처 : https://blog.naver.com/sunflower-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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