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olofv 님의 블로그

5호16국시대 - 주요국 전체 구도 본문

역사

5호16국시대 - 주요국 전체 구도

Toolofv 2024. 10. 11. 00:51

삼국지 위촉오시대를 사실상 끝내고, 중원을 장악한 것은 조조의 위나라였다. 조씨의 위나라는 사마씨에게 넘어갔고, 팔왕의 난과 영가의 난을 거쳐 서진은 멸망하고, 사마씨는 강남쪽에 겨우 명맥을 이을 뿐이었다.

 

당시 5호(흉노, 선비, 저, 갈, 강) 의 남하는 유럽의 게르만족 이동과 시기상 겹친다. 기후위기에 따른 먹고사니즘에 의한 인구이동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또 유럽에도 이 5호16국시대의 기록이 남아있다고 하는데, 훈족때문에 고생했다고 기록되어있다. 5호16국시대의 주요 국가와 시기, 전체 구도를 보는 데에 초점을 두고 작성하려 한다. 

 

 

간쑤성 일대 - 전량(301~376) : 한족 장궤

 

장궤는 서진의 양주자사였고, 당시 양주는 이민족들이 날뛰던 무대였는데, 선비족을 격파하고 70년이 넘는 기간을 유지한다. 장궤가 살아있을 당시는 서진의 신하를 자처하였으며 장식, 장무, 장준, 장중화(346~353)에 이르기까지 다른 5호16국에 비해 순탄한 계승을 했으나, 장중화 사후 골육상쟁의 늪에 역시 빠지게 된다.

 

장무 때 전조 유요의 20만대군 침공(323), 장중화 때 후조 석호의 12만대군 침공(346)을 막아내고, 전연의 모용준과 협약하여 후조를 치고자 했지만, 염민에게 후조가 멸망해버렸다. 이후 전진(351~394)의 부견에게 붕괴된다. 이후 전진과 동진의 비수대전(383)에서 전진의 어그로가 풀린 틈을 타 재기를 꿈꾸지만 후량(386~403)에 당한다. 

 

5호16국의 소용돌이에서 묘한 균형을 잡으며, 꽤 점령하기 힘이 드는 지리적 요건을 가지고 외교를 통해 꽤 오래 유지했지만, 결국 국력이 약해져 전진과 동진 사이에 낀 나라가 되어 망한 듯 하다.

 

 

쓰촨성 일대 - 성한(302~347) : 저족 이웅

 

 

저족의 추장 이웅(304~334)이 촉을 중심으로 세운 나라이다. 저족은 티베트계로 강족과 기원이 같다고 한다. 현재 쓰촨성 성도에 도읍하였고, 처음에는 국호를 성으로 하였다가, 한으로 고친다. 이웅 때 전성기를 누렸지만, 역시 사후에 골육상쟁으로 인해 혼란해진다. 결국 동진(사마담, 317~420)의 실세 환온에게 정벌당하고 멸망한다.

 

 

화북지방 - 전조(304~329) : 도객흉노 유연, 갈족 석륵, 한족 왕미

 

 

유연은 남흉노 선우 어부라의 손자고, 삼국지에 등장하는 흉노 좌현왕 유표의 아들이다. 서진 사마염의 양자 사마유가 유연의 비범함을 보고 제거하려 하였으나 살아남았다. 사마염의 19남(;) 성도왕 사마영의 휘하에서 활약하다 팔왕의 난 (290~306)으로 볼장 다 봤다 싶은 서진을 빠져나와 '한'조를 계승한다. (남흉노와 한나라 유씨와는 그래도 긴밀한 게 있었던 듯.) 이후, 아들 유총(310~318)과 석륵 등이 서진을 멸망시킨다. 유총 또한 황제 유화(310)를 폐위시키고, 스스로 황제가 되는데 이 시기 각 국가가 후계로 비슷한 문제를 겪는 패턴이 자주 나온다.

 

5대황제 유요(319~328)시기, 장안에 도읍하고 조나라로 국호를 바꾼다. 후대에 석륵의 후조와 구분지으려 '전조'라 칭한 것. 석륵이 319년 조왕으로 자칭하였다. 3대 유총이 붕어했을 때, 아들 유찬이 외척이자 대장군이었던 근준의 난(318)으로 인해 피살되고 유요와 석륵이 이를 진압하지만, 이 둘 사이에 긴장관계가 부각되면서 결국 석륵이 유요와 그 일족을 제거하고 후조를 건국한다.

 

화북지방 - 후조(319~351) : 갈족 석륵, 염위(350~352) : 한족 석민(염민, 350~352)

 

 

갈족에 대한 기원은 설이 분분하고, 흉노의 휘하에서 한솥밥먹던 세력이었다. 석륵(319~333) 또한 팔왕의 난때, 유연과 더불어 주가를 올리고 명성을 얻어 세력을 이룬다. 어릴 적, 아직 서진인 시절에 노예생활을 하였다고 하고, 노예에서부터 후조의 왕, 사후 황제에 추존되는 아성을 보여준다.(349)

 

이후, 석륵이 사망(333)하고, 석홍(333~334)이 계승하였으나, 석호(334~349)가 실권을 장악하고 왕위를 찬탈한다. 꽤 안정기를 보냈으나, 사냥과 정벌, 토목사업을 무리하게 벌였다. 석호가 죽고(349), 석세가 제위에 올랐으나 갈족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상황이 연출되고(def 팔왕의난(갈족)..), 한인이었던 석민(염민, 350~352)이 위나라(염위)을 일으킨다. 집안싸움 중 태자를 약속받고, 석준(349)의 편에 섰으나 석준이 낼름 입을 닦는 것을 보고 신중히 세력을 키우다 석준을 제거했다. 석감(349~350)을 옹립한 후 자신이 황제가 되는 코스를 밟는다. 염민은 후에 갈족의 반란을 두려워하여 이들을 잔인하게 숙청했다고 한다. 염위와 양국(후조의 수도)은 치고받다가 전연(337~370)의 모용준과 모용각이 결국 어부지리를 낚게 된다. 염위는 결정적인 전투는 패배하였으나 모용부 선비 전연과 꽤 잘 싸웠다고 한다.

 

 

화북지방 동부(현 허베이,산둥,랴오닝성 일대) - 전연(337~370) : 선비족 모용부 모용외(285~333), 모용황(337~348)

 

 

북흉노세력은 구심점이 부재하고, 남흉노는 남하하여 한과 서로를 길들여갈 때, 북방 지대의 밀도는 선비족이 자연스럽게 채우기 시작했다. 단석괴(151~181)가 북방과 중원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 시기 이후, 선비족은 탁발, 우문, 모용, 단, 걸복의 갈래로 나뉘어졌다.

 

선비족은 부여, 고구려와도 상호작용이 많았는데, 선비족은 고구려와 같이 한의 군현을 털어먹을 때도 있었다(121). 모용부의 모용외(285~333)는 부여에 많은 피해를 입혔고(285), 아들 모용황(337~348)은 전연때 사실상 부여를 멸망시키기도 한다(346). 고구려 봉상왕(292~300)시절, 모용외의 선비족에게 잦은 침탈을 당하는데, 고노자의 기병이 물리치기도 했다. 모용황은 고국원왕(331~371)때 후조의 식량보급지노릇을 했다는 걸 빌미로 환도성을 함락하고, 미천왕의 무덤을 파헤치기도 하고, 고국원왕의 어머니와 왕비를 납치한다.(342).

 

전연은 동진과 낙양을 두고 전투를 벌이기도 했는데(369~370), 모용외의 5남이었던 모용수(후연, 384~396)는 모용외의 후계를 이은 모용준(348~360) 세력의 갖은 견제를 받았던 상황이었다. 그래도 유리한 지형을 차지하는 등 동진의 환온과의 싸움에서 동진군에게 타격을 입히는 데 성공한다. 모용수는 내부의 견제를 두려워하여 결국 전진의 부견(357~385)에게로 망명한다. (후일 모용수는 후연을 건국하게 된다.) 

 

앞서 보았듯, 전연은 후조, 염민의 싸움에서 어부지리를 취했고(350), 당시 강한 국력을 자랑했지만 전진의 부견에 의해 멸망한다(370). 

 

 

화북지방 - 전진(351~394) : 저족 부건(352~355), 부견(357~385)

 

 

저족의 추장 부건이 장안을 공략하고 초대 황제가 되었다. 아버지 포홍(부홍)시절에 실질적인 국가를 이루었으며, 후조의 석호(334~349)에 복속하기도 했다. 후조가 몰락하고 동진에 붙는 듯 싶더니, 352년에 칭제하고 장안을 도읍으로 삼는다. 

동진의 환온과 일전을 펼쳤으나(354), 역부족에 항복하였다. 후에 보급문제로 퇴각하는 동진군을 습격하기도 한다. 부건 사후, 부생(355~357)이 황제에 올랐으나 부견이 왜곡한 것인지는 몰라도 엄청난 사이코패스 살인중독 황제였고, 수광정변(357)으로 부건의 조카 부견이 부생을 폐위시키고, 코스대로 자신이 황제에 오른다.  3대 부견때는 전연을 멸망(370)시키고, 전량을 병합(376)했고 양자강 이북의 땅을 평정했다. 

 

부견(357~385)은 이민족을 적극 통합하여 5호16국에서 화북을 최초로 통일했는데, 앞으로의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는 비수대전(383)으로 몰락의 길을 걸었다. 비수대전은 전진이 유리한 구도였으나, 한번의 퇴각이 연쇄적인 퇴각을 불러일으키고, 대군이 붕괴한 전투였다.

 

대군이 무너지고, 화북 지방의 균형이 무너져 망명했던 전연의 모용수가 후연(384~407)을, 신하였던 강족 수령 요장이 후진(384~417)을, 걸복부 선비족 걸복국인의 서진(걸복진, 385~431)을, 역시 신하였던 모용부 선비족의 모용홍이 서연(384~394)을 세워 다시 혼란기로 접어든다. 전진의 부견 일족은 사방의 적으로 인해 멸망한다.(394)

 

 

강남지방 - 동진(317~420) : 한족 사마예(317~322), 유송(420~479) : 한족 유유(420~422)

 

 

영가의 난으로 서진이 멸망한 후, 강남지방에 기반을 잡고 있던 사마예(317~322)가 진나라를 계승한다는 명분으로 동진의 황제가 되었다. 조적 장군이 북벌을 적극 추진하려고 했으나, 조적이 공을 세우면 실권자가 될 거라는 생각에 내부에서 뒤로 견제를 받는다. 당시 동진은 황권이 매우 취약하고 귀족들의 전횡을 견제하기 힘들었던 것 같다. 환온이 성한을 정벌(347)하고, 전진, 전연과 싸우며 전투력을 보여주니 그 기세에 주눅들 수밖에 없었던 듯. 356년에 잠시 낙양을 수복하지만, 361년에 전연의 모용각이 재탈환한다. 전연과의 낙양 전투(369~370)에서 승기를 굳히나, 모용수가 동진의 보급로를 차단하여 퇴각할 수 밖에 없었다. 

 

이후 비수대전(383)에서 전진의 퇴각을 부르는 퇴각과 명재상 사안의 작전지휘가 겹쳐 대승을 거둔다. 이후 사안은 황제 사마요(372~396)의 동생 사마도자(397~403)의 공신 견제로 인해 두각을 드러내진 못했다. 사마요 사후 사마덕종(396~404, 405~419)이 제위에 올랐으나, 환온의 아들 환현이 북부군과 서부군의 지원을 받고 반란을 일으킨다. 환현, 유뢰지, 손은 등 군웅이 할거하는 혼란이 연출되었다. 결국 환현이 사마덕종에게 선양을 받아 잠시 환초(403~404)를 세운다.

 

유뢰지 휘하에 있던 유유는 403~404년에 환현을 무찌르고 동진을 부활시킨다. 이후, 강족 후진(384~417)을 삥뜯다가 후일 멸망시키고(417), 모용선비족의 남연(398~410)도 공격해 멸망시킨다. 420년, 마지막 황제였던 사마덕문(공제, 420~421)을 제거하고 스스로 황제에 올라 유송(420~479)왕조를 개창한다.

 

 

화북지방 동부 - 후연(384~407) : 모용선비 모용수(384~396)

 

 

전연에서 견제받던 모용수가 전진의 부견(357~385)에게 망명했다가 비수대전(383)으로 무너진 틈에 멸망했던 연을 다시 세운다. 전연 멸망 이후 요동에서 꿀빨던 고구려를 몰아내고(385), 같은 모용씨 국가인 서연(384~394)을 멸망시키는 등 신흥강자였지만, 탁발선비인 북위(386~534)와의 내몽고지역의 참합피 전투(395)에서 패배하고 서서히 몰락한다. 당시 고구려는 후연의 몰락과 광개토대왕(391~412)의 등장, 거란, 말갈과의 협업에 입어 영토를 크게 확장하고 전성기를 맞이한다.

 

 

화북지방 서부(섬서성 북부 일대) - 북위(386~534) : 탁발선비 탁발규(386~409)

 

 

대나라(315~376)라는 전신이 있고, 5호16국의 분류에는 들지않는다. 전진의 부견(357~385)에게 대패하여 쇠퇴하다 비수대전(383)으로 말미암아 탁발규(386~409)가 자립하여 북위를 건국한다(386). 3대 황제 태무제 탁발도(423~452)의 시기에 혁련발발의 대하(407~431), 모용운(고구려계)의 북연(407~436), 후량(386~403)에서 독립한 저거몽손의 북량(397~439)을 멸망시키고, 화북을 통일했다. 436년 북연의 풍홍이 고구려에 망명을 시도했고, 장수왕(412~491)시기 고구려는 북연의 화룡성을 약탈하기도 했고, 북연인들의 대규모 망명을 받기도 한다.

 

탁발도는 몽골 오르콘 강 유역에 기반을 둔 선비계열 유목제국 유연(330~555)을 공격해 유연 사람들을 많이 죽였다고 한다(425, 443, 449). 또 같은 모용선비가 지배하고 있는 토욕혼(285~663)을 공격해 약화시키기도 했다. 북위가 너무 쎈 나머지, 고구려-유연-유송은 서로 암묵적인 혹은 공식적인 외교를 통해 북위를 견제했다. 마치 미니러시아를 연상시키는 한반도의 지리적 요건(+산지)은 한번 빨려드면 멈출 수 없는 트랩과도 같고, 주변 국가와의 상호 견제로 인해 북위와 고구려는 한 판 쎄게 붙지는 않았다.

 

풍홍의 손녀 풍태후(466~490)는 우여곡절 끝에 북위의 실권을 쥐기도 한다. 438년 고구려와 유송과의 주도권 다툼에서 풍홍은 제거되고, 풍태후가 고구려에 원한을 가졌을 것이라 여겨 고구려는 긴장하였으나 이로 인해 문제가 불거지진 않았다.

 

이후, 유연을 경계하는 6진에서 벌어진 육진의 난(524~530)으로 북위는 이주영이 패권을 잡고, 호태후세력을 숙청하였고, 이후 고환과 우문태세력이 나뉘어 남은 황족들은 앞으로의 유망종목에 베팅 혹은 강제베팅을 당한다. 북위는 이로 인해 동위(534~550), 서위(535~557)로 나뉘고, 또 동위는 북제(550~557)로 서위는 북주(557~581)로 각각 다른 길을 가게 된다. 

 

이후 북주의 양견(581~604)이 수나라를 건국하여 5호16국, 위진남북조 시기는 끝이 나게 된다.

그리고 돌궐이 유연을 밀어내고 북방과 중앙아시아에 등장하게 된다.

 

<5호16국시대 - 나무위키 펌>

 

 

<5호16국 - 네이버 지식백과 펌>

 

※ 5호16국 -

흉노, 선비, 저, 갈, 강

전량, 전조, 성한, 후조, 전연, 후연, 전진, 후진, 서진, 후량, 남량, 북량, 남연, 서량, 북하, 북연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