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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평전(1983) - 조영래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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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인간의 시대에 고독한 인간 선언
전태일(1948~1970)은 인간이 물질화되고, 노예화된 암흑의 시대에도 인간이 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비범한 천재다. 스스로의 삶을 버려서 또 다른 나들, 전체의 일부인 다른 나들을 깨우고 뒤이어 새로운 꽃이 피어날 토양을 준비한 성자였다. 2025년 현재 그가 살아있었으면 77세의 나이다. 우리의 기억 속에 전태일은 22세의 젊은이로 살아숨쉬고 있으며, 역사 앞에서 고독하게 그가 뿌린 씨앗은 후대의 이들에게로 심어져 우리의 일부분을 구성하고 있다. 그의 삶은 어쩐지 예수를 떠오르게 한다. 돌아보면 눈물이 난다.
그는 6. 25. 전쟁 전 혼란한 시절에 태어났다. 어머니 이소선 여사는 독립운동가 아버지를 여의고 가난하게 살아왔고, 아버지 전상수는 대구 10. 1. 항쟁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현실의 무게를 버티는데 녹록치 못했던 가장이었다. 전태일은 배움에 목말라했지만 실질적으로 교육을 받을 수 있던 시기는 그리 길지 못했다. 전태일의 짧은 인생 중 그가 유일하게 행복해보이던 시절은 청옥고등공민학교를 다니면서 공부를 하던 때였다. 배움이 길진 못했지만 그가 남긴 글은 그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밑바닥, 짧은 생 속 그의 사상과 생각은 어떤 공부로도 배울 수 없는 본질적인 것이 있다.
어린 시절에는 그는 여러 가출 경험에서 남동생 태삼과 궤짝에서 노숙하기도 했고, 어머니가 식모살이로 서울로 상경했을 때 돈을 벌기위해 어린 여동생 순옥이를 미아보호소에 2달간 맡기기도 했다. 전태일은 평화시장 미싱사에 취직하면서 순옥이를 데려오고 가족이 다시 서울의 쌍문동 판잣집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순옥이 잃어버린 거 아닌가 걱정했는데 현재 국회의원이다.) 그러나 평화시장은 이름과 다르게 당시 비인간적인 세태를 그대로 복제하고 있었고, 시다 일을 하는 끔찍한 환경 속 어린 여자 아이들의 삶을 전태일은 외면할 수 없었다. 적은 월급과 오전 8시반부터 저녁 11시까지 온종일 섬유먼지가 가득한 좁은 곳에서의 착취. 병을 얻고 지금까지 번 돈보다 상회하는 병원비와 해고. 햇빛도 볼 수 없고 허리도 필 수 없는 열악한 환경.
그는 '부한 환경'의 이질적이고, 비인간적인 이면에 환멸했다. 발가벗겨지지 않은 겉보기뿐인 현실을 그는 탄핵했다. 그는 그를 옭아매는 구속과 부자유뿐인 지옥같은 곳에서 모든 것을 하나하나 자신의 힘으로 사유하고 인간을 긍정했다. 덩어리화된 모두가 인간의 존재를 말하지 않고, 길들여져 '온건', '성실', '근면'같은 언어가 억압자에 의해 노예의 언어로 뒤바뀌어 있던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인간'임을 선언했다. 그의 고독한 인간선언은 가지를 피고 나와 그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의 삶을 뒤바뀌게 했고, 세상을 바꾸게 했다.
전태일 평전(1983)은 인권 변호사 조영래의 글로 쓰여져 있다. 조영래 변호사도 당시 서슬퍼런 세상과 불화했던 인간이었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쫓기는 와중에 전태일의 글과 일기를 연구하고 전태일 평전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의 문체 또한 아름답다. 시대의 인간과 인간의 존엄한 만남이다.
이 결단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워했던가?
지금 이 시간 완전에 가까운 결단을 내렸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생을 두고 맹세한 내가, 그 많은 시간과 공상속에서,
내가 돌보지 않으면 아니 될 나약한 생명체들.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조금만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너희들은 내 마음의 고향이로다.
오늘은 토요일, 8월 둘째 토요일. 내 마음에 결단을 내린 이 날,
무고한 생명체들이 시들고 있는 이 때에
한방울의 이슬이 되기 위하여 발버둥치오니 하나님,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인간을 물질화하는 세대, 인간의 개성과 참 인간적 본능의 충족을 무시당하고
희망의 가지를 잘린 채, 존재하기 위한 대가로 물질적 가치로 전락한 인간상을 증오한다.
그는 생각한다.
이 세상 어느 곳에서 누구를 지적하여 인간상의 표준을 삼을 것인가.
인간의 참 목적인 평화와 희락(喜樂)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그는 생각한다.
인간은 어딘가 잘못 가고 있는 것 같다고.
생존하는 목적의 본질이 희미함을 다행으로 생각하는 세대.
흐린 탁류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세대.
자기 자신의 무능한 행위의 결과를 타인이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세대. ···
나의 또 다른 나들이여.
생각해야할 것을 생각하므로 그대들의 존재가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아는가?
한 영혼의 절규를 외면하기 이전에 자기 자신의 심적 더러움을 점고(點考)해본 일이 있는가?
어머니, 내가 못다 이룬 일 어머니가 꼭 이루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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